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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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249회 작성일 21-10-05 10:32본문
이명耳鳴 / 백록
여름이 저만치 물러갔는데도
어느덧 한로의 기슭인데도
매미들이 통곡을 한다
그들의 죽음을 분명코 목격했는데도
이승에 무슨 여한이 남았는지
내게 붙어 귀신으로 산다
혹시, 우화羽化하기 전
지난날의 삶이 도로 그리운 걸까
다시 날고 싶은 걸까
네 전생의 체본을 곰곰이 헤아려보니
머리로 비치는 갓끈으로 보아 선비인 듯하고
나무의 깨끗한 수액만을 먹고 곡식을 축내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청렴할 것이며
살 집을 따로 짓지 않던 것으로 보아 물론 검소할 것이며
계절을 어긴 적 없었으므로 신망이 두터웠을 터
하여, 나는 그냥 너와 함께 살련다
귀찮더라도 이대로
새 알을 낳고
날아갈 때까지
댓글목록
최현덕님의 댓글
최현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명은 견딜만 해요
뿔에만 받히지 않으면 됩니다. ㅎ ㅎ
이명은 귀를 막아도 열어도 이명이 통곡하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매미의 지랄 때문인지
뿔이 다가오는 소릴 못듣겠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섬의 기억 / 백록
바람으로 구름으로 물결로 출렁이던 기억이 갈수록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그 기억을 되살리려고 일단 나의 첫날 같은 정유년을 소환한다
그날 새벽을 일깨우던 암탉은 이미 망각으로 묻힌 무덤 속이라
거슬러 나의 전생이 뚜렷이 비치는 무자년으로 향한다
그 가운데서 허우적거리던 할미 품속으로 간다
먼저 일제의 식민으로 서방을 잃고 나중의 혼란에 시아비를 잃고
연좌처럼 이어진 전쟁에 아들마저 잃어버린
마흔 즈음의 청상과부에게로 간다
여기서부터 종종 헷갈리는데
아니다. 그로부터 강산이 한 번쯤 변할 즈음에
조상님들께 선보일 장손의 자격으로 간다
하루 보리밥 두 끼면 족하던 시절로 간다
뚝 뚝 끊어지는 흑백필름 속으로 간다
바람도 끊어지고 구름도 끊어지고 물결마저 끊어지고
이런저런 인연들까지 기어코 끊어져버리던
그 시간과 공간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그 트멍으로 얼씬거리는
그날이 언뜻
사시斜視의 사월인 듯
사시死屍의 시월인 듯
이 섬의 불안한 행간들을
힐긋 더듬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