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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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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바리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9회 작성일 21-11-26 01:49

본문

노을



숲속에는 몇 권의 책과 노트북과 어머니와 그리고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성가신 참새도 쌓인 치부처럼 싸질러놓은 비둘기 똥도 볼 수 없었다

그 사람을 처음 본 그날처럼 햇살이 따사로웠다

입술에서 부리가 돋아나 재재바르게 푸념을 떨고 싶었던 그 순간


아버지는 침상에 기대어 있었다

한쪽 다리를 고이고 또 한쪽 다리는 뻗은 채 침묵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천화(遷化)를 꿈꾸고 있었을까

부활이었을까


아직 온기가 남은 종아리를 거머쥔 채 나는 한없이 침상 바닥으로 꺼져가고 있었다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촛불은 심지가 잘려버렸다


서랍 속에는 낯익은 손톱깎이가 손톱을 잘라내고 있었다 

잘려 나간 손톱들이 폐부 속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숲속에는 교흔이 선명한 청설모 한 마리가 잘려나간 손톱자국들을 파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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