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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사슴의 눈(퇴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김재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4회 작성일 22-01-15 10:51

본문



검은 사슴*의 눈(퇴고) / 김 재 숙

 

 

스스로 묶은 결박을 풀었다

 

무너진 갱 속

살아서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긴

모래알 스치듯 서걱대는 사슴의 눈이

황량한 벌판 먼지에 쌓인 지상으로 올라왔다

바위를 쪼갠 발톱과 녹신거리는 털로 감싼 울부짖음이

굶주린 송곳니 사이에서 피 흘리는 동안

형형한 눈빛만이

오직 신앙처럼 붙들려

마지막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될 수 없는 비좁은 방으로

아직

격정 따위가 끓어 넘치는 희원을 버려두고

깜박이는 초록의 불을 천천히 걸어

고고한 뿔을 잘라 낸 도시를 빠져 나왔다

 

사슴 눈이 죽어간 흔적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들것에 실린 건 본디 인간의 탐욕이었으니까.



                                   *검은사슴/ 한강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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