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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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베란다 창틀과 감나무 잎 사이에
매듭으로 허공을 쪼갠 낡은 거미집
자그마한 날벌레 몇 마리 묶어놓고
나뭇잎 뒤에 숨은 거미, 침묵의 경계 속에서
여덟 개 다리로 공중부양한 채
흔들리는 삶을 부여잡고 망중한(忙中閑)을 즐긴다.
자기함정에 갇힌 채 지쳐버린 인내
오랜 기다림 속에 정적을 깨며
뚝 떨어지는 침묵에 출렁이는 거미줄
순간 바짝 긴장하는 날선 거미
아무 흔적이 없자 찰나의 긴장을 풀며
쫓아오는 바람을 거미줄 사이로 내보낸다.
고립(孤立)의 진원지를 지키는 삶이기에
남의 불행을 애타게 기다리는 슬픈 숙명(宿命)
허기진 만큼 숭숭한 거미줄에 느슨한 위장(僞裝)
이젠 집수리 할 기력도 없고
교통사고 현장에 늦게 도착한 레커차처럼
계면쩍음을 달래며, 흔들거리는 존재로
또 다른 먹이를 기다리는 음흉한 미소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세월을 낚아채는 태공처럼
생을 관조하는 깊은 시심에 머물다 갑니다.
시, 잘 감상했습니다.
비 피해가 속출하는 작금에
건강관리, 안전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휴일 잘 보내시고요.
상당산성님의 댓글

장마철에 콩트님의 귀한 걸음 감사합니다.
낡은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의 인내를 보면서 한 수 배워봅니다.
콩트님도 장마철에 건안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