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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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가 -
가구들이 하나하나 떠났다
아내와 남편이 떠나고
아이들도 떠났다
현관을 지키던 개의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가슴을 열어 장기들을 기증한 것처럼
내 몸은 텅 비어 있다
내 주변을 기웃거리는 건 바람의 치맛자락뿐이다
자꾸 수축해지는 꿈을 꾸게 된다
대문은 누군가 들어왔으면 하는 눈치였어
내 그림자를 잠시 대문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문틀을 가까스로 붙들고 있는 현관문
내 눈동자는 집안을 보려 안달 났다
창문의 유리는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으르렁 거렸다
창틈으로 손을 뻗는 햇살은 차가왔다
바닥엔 아직 비우지 못한 술병과 빈병들
빈병들이 불어대는 휘파람 때문에 몸은 움츠리게 된다
등 뒤에 바싹 달라붙은 내 그림자
귀퉁이를 지키는 하얀 거미줄이 너울거린다
어느새 내 옆구리에 달라붙은 달의 혓바닥
정숙해진 폐가의 가슴은 쓸쓸해 보인다
툭 건드리면 와르르 비명을 지를 것 같았어
낡은 바람이 기웃거리는 밤이 지나간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생의 부스러기들이 널브러져 있는 폐가를 보면
좋은 일로 떠났을까
나쁜 일로 떠났을까 생각이 복잡하게 얽히더군요.
잘 감상했습니다.
행복한 설명되십시오. 이장희 시인님.
이장희님의 댓글

좋은 일로 떠났겠죠.
어릴적 폐가를 간 적이 있는데
무서운 기분이 들더군요.
귀한걸음 감사합니다.
설 명절 잘 보내세요.
늘 건필하소서, 수퍼스톰 시인님.
고나plm님의 댓글

가슴을 열어 장기... 자꾸 수축해지는 꿈... 폐가의 가슴,
이런 문장들이 폐가를 더 폐가스럽게 하는 것 같습니다
폐가의 세계가 잘 표현된 듯 합니다
폐가의 그 어떤 것들이 시인님을 다녀간 것인지요?
잘 감상하였습니다
설 명절 잘 보내십시요~
이장희님의 댓글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폐가라는 제목 쉽기도 한데 저한테는 어렵네요.
시인님이 잘 표현하실 것 같은데 언제 폐가에 대한 시 부탁드립니다.
귀한걸음 감사드려요.
설 명절 잘 보내세요.
늘 건필하소서, 고나plm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