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실에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 미술실에서 -
썩은 사과와 괜찮은 사과를 바구니에 함께 담는다
바구니를 빠져나오려는 사과
창가를 등지고 있어야 하는지
마주보고 있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연필 끝에 빛이 들어있고
사과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것도 필요치 않다
그릴 수 없는 향기
탁자 위를 택할 것인가 의자 위를 택할 것인가
저울질 하는 생각이 안개 속에 갇혔다
썩은 사과가 더 많아 보여 좀 망설이는 생각
갈등과 갈등이 서로 겹치는 아득한 시간
연필 끝을 보고 구도를 만지작거린다
탁자 위 사과와 의자 위 사과 중 하나는 지워야 한다
사과가 담긴 바구니를 빼볼까
생각은 엉켜버려 도망치려 한다
오직 사과에만 집중하라며 생각은 내 뒤통수를 친다
둘 다 그리려 하지만 시간이 고개를 절레절레
연필로 시작하지도 못하는 스케치의 멱살을 잡다가
허기는 허락받지 않고 찾아온다
탁자와 의자가 던져놓고 있는 갈등의 눈빛
둘 다 그리기에 시간은 줄행랑을 칠 것 같다
다시 연필 끝을 보고 둘 다 구도를 끄집어내지만
어느 하나가 툭 튀어 나갈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아침이 살며시 그림자를 내려놓는다
바구니에 있던 사과를 한입 깨물어 먹는다
깨물린 사과가 나 좀 봐달라고 안달 났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