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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너머의 세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224회 작성일 25-12-09 16:21

본문

안경을 벗자 시야는 내 이름을 먼저 잊어버렸다

글자는 다리가 돋아 도망가고

색깔은 서로의 고막을 핥으며 울었다

눈동자에선 빛이 아니라 무게가 떨어졌다

무게가 바닥에 닿자 바닥이 하늘로 뒤집혔다

유리알 속에는 누가 숨 쉬는지 몰라

바람의 주머니를 더듬어 만져보니

내 어제와 네 내일이 한 장의 영수증으로 포개져 있었다

숫자들은 흐느끼며 서로를 지웠고

지워진 자리에서만 새들이 태어났다

새들은 날지 않고 문장을 씹어 삼켰다

그들의 부리에선 모음이 끈적하게 녹아내렸고

자음은 서로를 미는 골목처럼 좁아졌다

골목을 지나던 내 그림자가

갑자기 나에게 주인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림자는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빛은 언제나 늦는다고 속삭였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빛은 날 따라잡기 위해 걸음을 포기했다

대신 어둠이 나에게 안경을 씌워주었다

그 안경 너머엔

나의 발자국들이 서로에게 길을 묻고 있었고

길은 대답 대신 눈물을 빌려주었다

그 눈물에서만 시간은 익었다

익은 시간을 한 입 베어 물자

달콤한 미래가 아니라 잉크 흘린 과거가 입안을 휘감았다

나는 뱉지 않고 삼켰다

그리고 다시, 안경 너머로 사라졌다.

댓글목록

이장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장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경을 30년 넘게 착용하고 있어요.
안경 없으면... 뭐 아실겁니다. ㅎㅎ
[그 눈물에서만 시간은 익었다] 여기가 저에겐
확 다가오네요.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 수퍼스톰 시인님.

김재숙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재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경너머 사라진 과거는 말랑말랑한 눈물로 남을지 모르지만 다시 맑은 안경알에 맺힐 내일은 아주 밝은 빛으로 다가 올것 같습니다
좋은시 잘 감상했습니다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profile_image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장희 시인님,
김재숙 시인님,
혼자 중얼중얼 횡설수설한 글에 마음을 얹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한 해의 끝자락이 다가 오니 마음만 분주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5년, 멋지게 마무리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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