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속 이별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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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식어가는 방향으로
문틈에 놓아둔 체온이 천천히 기울었다.
작은 원룸의 공기는 두 개의 그림자를 담기엔 이미 오래전부터
너무 낮은 온도로 굳어 있었지.
벽지는 기억의 비늘을 벗겨내며
서랍 속 숨겨둔 말들의 골격을 드러냈다.
너의 이름은 전등 스위치에 걸려
켜질 때마다 미세한 눈발처럼 흩어졌고
나는 그 조각들을 손바닥에서 녹여 보려다
늘상 손끝만 빨갛게 얼려버렸다.
싱크대 위에 남아 있는 컵 둘,
한 개는 온통 성에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한 개는 네가 떠난 뒤부터 미묘하게 따뜻한 김을 뿜어냈다.
어쩌면 그건 네가 두고 간 마지막 숨,
혹은 더는 돌아오지 않을 어떤 날의 체취였을까.
창문 밖에서는
새벽이 어둠의 옆구리를 눌러 깨우고 있었지만
바람은 이 방을 지나치지 않았다.
이별은 언제나 문밖에서 부는 바람이 아니라
집 안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냉장고의 온도처럼 내려가는 법.
나는 가끔 네가 두고 간 그림자를
구석에서 꺼내어 햇빛에 말리곤 했다.
그러면 그림자는 점점 가벼워져
마치 종이비행기처럼 떠오르며
내 가슴 한쪽을 관통하고 천장에 가 붙었다.
그 자리에 난 오래도록 못을 박지 못했다.
오늘도 방은 기억을 겨울로 밀어붙이는 푸른 숨을 내쉬고
나는 그 속에서 혼자,
더 이상 녹을 것도 얼어붙을 것도 없는
낯선 온도의 생명처럼 앉아 있다.
그러니 누가 말해줬으면 한다
이별의 온도는 참으로 묘한 것,
불씨도 얼릴 만큼 차갑다가 가끔은 빈방의 공기마저 벅찰 만큼
아프게 따뜻하다는 것을.
댓글목록
이장희님의 댓글
원룸 속 사연 잘 감상하고 갑니다.
5연이 자꾸 끌리는 느낌 입니다.
다가오는 주말 행복하세요.
늘 건필하소서,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세입자가 떠난방에 정리하러 들어갔다가
싱크대 위 물받이 위에 두고 간 컵 두 개를 보고
가설의 상황을 설정하여 지어 보았는데
제가 경험한 게 아니니까 시가 깊이가 없네요.
편안한 밤 되십시오 이장희 시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