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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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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피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90회 작성일 17-10-29 13:55

본문

<조로증>

내가 늙어버렸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사소하다
한때는 날밤을 새워서까지 미쳤던 컴퓨터 오락이
어느 순간 말할 수 없으리만치 뻔해지고
권태기의 섹스처럼 의미없는 움직임으로 점철되는 순간
아, 정말 이따위 개짓거리 못해먹겠네
생각이 들고 나는 늙어버리고 만다

내가 늙어버렸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사소하다
이 한 몸 불사르는 한이 있어도 미치겠노라 했던
창작을 향한 헌사가 점차 빛을 바래고
날마다 빈티지 와인을 까는 연례행사처럼 변하는 순간
아, 정말 이따위 개짓거리 못해먹겠네
생각이 들고 나는 늙어버리고 만다

내가 늙어버렸다고 생각할 때는 어쩌면 이렇다
한때 민족 부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지만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벼워져 버려서
지금 당장 사라져도 아무런 미련이 없는 게 분명한데도
끝도 없이 맥빠져서 살고만 있으니
차라리 빨리 늙어 죽기만 바라야 할지도

옅어진 욕구를 부여잡고 버티기조차 무의미해진 나는
도대체 얼마나 세상을 빠르게 산 걸까
아둔하고도 멍청한 질문만이 뜻없이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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