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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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몰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592회 작성일 17-11-03 21:46본문
빗방울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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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무표정한 눈동자에 눈물을 그려 넣어서가 아니라
또한 그의 무뚝뚝한 말투에 울음을 더빙해서도 아니다.
단지 한 여자가 떠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1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녹순 대문이 열리던 순간
그는 잔잔하던 공간에 온도가 스며드는 것을 느꼈고
곧이어 안개가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2
그가 손님을 맞았을 때
차가웠던 곳에 온기가 돌자
안개가 안개비가 되어 빈 공간을 적시고 있었다.
그 손님이 추위를 느끼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3
그 손님의 체온이 그에게 전해지기 까지
그는 비가 내리는 낯선 텅 빈 공간에 홀로 떠돌다가
그 손님의 눈동자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쳐오자.
그 손님은 그의 좁은 공간에 천막을 치고 장작불을 지폈다.
4
선잠을 자더라도 정말 따뜻했다.
그는 오랜만에 편한 잠을 잤다.
5
장작불이 타다닥 꺼질 무렵 그가 잠에서 깨었다.
비바람도 거치고 있었다.
온도가 변하려 하자 그가 손님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손님의 눈동자가 한없이 맑게 개었다.
그 안에서 또한 늦잠에 빠져들었다.
6
컬러의 색깔들을 모두 섞어 놓으면
눈동자의 색깔이 된다.
그는 그의 눈동자 안에서 가장 좋았던 색깔들만
밖으로 꺼내 놓는다.
다 타버린 모닥불의 까만 색깔을 애써 피하고 싶다.
그는 그 손님이 내뿜는 가장 밝은 색깔을 쫓는다.
7
녹슨 대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에
깜박 잠들었던 그의 검은 눈동자가
다시 피어나는 안개에 갇힌다.
안개 속을 헤매고 다니는 그의 검은 눈동자가
이미 사라져버린 그 손님의 모습을 기억하려 한다.
8
안개는 안개비가 되고
그가 그의 검은 눈동자를 눈꺼풀로 가릴 때마다
굵은 빗물이 쏟아진다.
녹슨 대문은 오랫동안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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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임기정님의 댓글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아주 맛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