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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깊이 파기 위해 삽을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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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하여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297회 작성일 19-09-09 17:20

본문

 나는 깊이 파기 위해 삽을 버렸다

 

 

나는 평생을 시름에 빠진 맹인이었다

 

그날의 수학 시간엔 반복되는 덧셈 뺄셈에 질려 응용문제를 풀겠다며 떼를 썼다

 

마주한 복잡다단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빨간색 색연필은 가위표를 그리기 일쑤였다

 

계단을 오를 때면 뾰족뾰족한 단들을 반듯하게 밀어 처음과 끝을 맞추어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주한 밋밋한 계단은 그저 또 다른 험한 언덕길이었기에 가는 걸음걸음에 기대하던 생략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평생을 힌트를 구걸하는 학자였고


또 나는 평생을 요령에 맛 들인 곡예사였다

 

차라리 푹 젖어 찢어질랑 하는 시험지를 풀겠다고 우겨대는 수험생이었다

 

교과서에 작게 쓰인 글씨들을 하나도 읽지 못하였기 때문에 길을 잃곤 했다

 

평생이 시늉에 그쳤고 깊이를 잃어 대충 값을 부여받고 퉁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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