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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도 간편한 고독에 의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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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9릴령샌얀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6회 작성일 19-12-02 02:21

본문

나는 내 분노를 억누를 만큼 현명하지 않아.

슬픔을 받아들일 만큼 강인하지도 않아.

나란 오죽이나 속이 뻔한 놈인 건지 조금만 살아봐도 이 한심하고 여린 천성이 자각됐어.

그래서 두려웠어. 감당 못 할 분노와 슬픔에 미쳐버릴까 봐.

나 아슬아슬하게 웃고 있어.

남 앞에서 진심으로 웃으면 소중한 사람을 만드는 거 같아 예감된 미래가 보여.


반드시 겪어야 할 이별을 한 번도 모자라 몇 번이고 겪어야 한단 게 무서워.

난 혼자가 아니야. 언젠가는 가족을 잃을 준비가 돼야만 해.

그 마음 아픔을 상상만 해도 하루가 뒤숭숭하고 악몽을 꾼다고.

그렇다면 이미 엮이고 있는 인연 외엔 더는 누구도 좋아할 필요가 없었어.

만약 이별의 후유증을 다른 만남으로 진통하여 살다가

내가 당한 대로 누군가에게 이별의 이름이 되어 그리움만 물려주고 떠난다는 건

낙인 같은 그 그리움이 얼마나 아픈 건 줄 알면서도 저지르는 짓이야. 그래서 난 안 그럴 거야.

내가 겁이 모자랐다면 어쩜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들에게도

별 감정 내색하지 않고 그저 사회인으로서 몸담은 내 역할에 맞게 수동적으로 친절했을 뿐이야.

그러지 않고 누군가를 내면 깊이 소중히 여겼더라면 대신 화가 날 뻔한 일도 이젠 거의 안 생겨.

과거에는 악인이라면 노려봤겠으나, 사람을 사물로 보기 시작한 후부터는 감정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어.

기삿거리로 보는 멀리 있는 악인은 내가 경험하지 않은 사물이었고

가까이 있는 악연은 내 실수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 정도라 생각했어.

지금은 이렇지만 그러다가 내가 크게 후회할 날이 올 거라는 걸 아예 부정하는 건 아냐.

근데 어쩌겠어. 이 한심하고 여린 천성의 영혼은 고독이 그릇처럼 꼭 맞는데.

집으로 돌아오면 나가기 전 상태 그대로 잘 차려진 고독을 실감하고서야

오늘도 아무한테도 마음을 안 뺏겼다고 안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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