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쓴 편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석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537회 작성일 20-04-11 11:00본문
허공에 쓴 편지
석촌 정금용
하얀 붓 들어 투명한 문장을
허공에 띄우고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목련이 머물렀던, 연초록 손가락 흔들며 다가선 모란이 그 빈자리에 앉아
겉껍질을 색연필 벗기듯 벗겨낸
여느 꽃처럼 푸른 도화지 같은 허공에 글자인지 그림인지 모를
건드는 바람을 핑계로 끄적거려
읽기도 쉽지 않아 무심결에
그냥 활기찬 봄날의 충동을 못 이겨 쓴 낙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지나고 보니
아무 뜻 없는 낙서가 아니라 오래오래 생각하다가
말없이 건넨 애달픈 사랑의 쪽지였다
제풀에 꺾인 삼동이 무너져내릴 때까지
무덤보다 더 고요한 어둠 속을 헤쳐 빛보다 더 빛나는 저만의 색을 찾아
꽃자주 색연필로 쓴 연서였다
누구나 읽어도 된다는 듯 공개된 편지 속에
동봉한 꿀맛에 가려진 뚜쟁이 구실도
여간이 아니었겠거니와
무수히 스쳐간
발길도 손길도 지나쳐버린 그 내용을
어찌 나비는 멀리서 사무친 속내까지 읽어 용케 찾아든 걸까
댓글목록
정석촌님의 댓글
정석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바람에 흔들리는, 저 봄을 가득 매운 갖가지 꽃의 움직이는 얼굴이, 무심결에 피었을 망정 내용이 숨겨진 그림이나 편지가 아닐까요?
누구나 가슴 깊이 지녀 지워지지 않는 그 그리움 같은
핀 꽃, 자체가 연서인 것을...
사랑의 쪽지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