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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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은미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543회 작성일 20-04-14 08:37본문
오래된 푸석한 시멘트 벽에서 구석으로
고단한 흑백의 눈알을 굴리던 어느 여윈 여자가
울먹이며 매운 벽돌의 멱살을 잡고 있는 골목
무게를 깍아내지 못한 시간들을 밟아야 하는,
기대고 절뚝거려야 내려갈 수 있는 이 빠진 계단들의
가슴 누렇게 비추는 가로등과 수많은 인연의 줄기로
묶여 선 전봇대 위로 커다란 달이 구름 가지를
헤치고 하얀 숲으로 숨어들자 어둠과 이별이 무겁고
무서웠던 여윈 그 여자는 절뚝거리다 절뚝거리다
쓰러질듯 골목 끝 환한 전깃불 속으로
지우개도 없이 지워졌다.
머물수 없었던 이유를 물으며 왼손잡이가 살던 집
매운 벽돌의 멱살을 잡고 밤새도록 부르고 불렀던
말간 왼손잡이의 이름
그 왼손잡이의 이름이 동그랗게 찻잔을 돌며
시간을 맴돌다 서서히 녹아갔다.
시간의 무게가 내려놓은 단어는 유리창이
멀미 할 만큼, 손이 하얗게 되도록 닦아내고
닦아내야 했던 지움이고 잊음이었다.
어깨 아팠던 균열로 길 모퉁이 이가 부러질듯 한
약속 없던 바람에도 한참을 멈춰 서서 서로 다른곳을
보며 다른 눈빛과 시간으로 백지가 되던 모진 오후가
서서히 어둠에 묻혀 갈 때쯤 왼손잡이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났다.
애처롭고 작은,여윈 그 여자를 거리에 남겨 둔 채
왼손잡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두꺼운 밤 속으로
묻혀 들어갔다.
여윈 그 여자는 찢어진 백지 반쪽을 들고 한참을
오래토록 서 있었다.
버스가 끊어지고 오랜 사랑도 끊어진 시간
여윈 그 여자는 절뚝거리다 절뚝거리다 돌아섰던
왼쪽길을 수도없이 돌아보며 멈 짓거리다 지워졌다.
어느 매운 빨간 벽돌 속에서 환하게 웃는 왼손잡이
지우지 못했던 왼쪽의 기억처럼 왼쪽에 누웠다.
애처롭게 작고 여윈 그 여자는 지금쯤 어디서
왼손을 깨물고 살까
아마도 머리위로 작은 나비 한마리라도
왼쪽으로 날았겠다.
댓글목록
너덜길님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마을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지라
잘 몰랐는데, 작은미늘님의 시를 쭈욱
읽어 보았습니다
완성도를 차치하고서라도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기운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봤으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작은미늘님의 댓글
작은미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사 합니다.시인님 맑은 마음으로 분발해서 좋은 글로 뵙겠습니다.
짧은 빗자루로 열심히 마당을 쓸었지만 아직 나무밑에 있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