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 > 창작시의 향기

  화초

  지군



   밤에 아이가 묻는다 마음이 하늘에 떠 있다 내가 묻는다 달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들은 가장 빨리 바다로 흘러간다 시체 속을 걷는다 나는 선택할 수 있는 표정이 없어서 얼굴을 버린다 찰흙을 뭉쳐서 던지면 이파리에서 폭음이 들린다 비는 파편이 널려 있는 바닥 위를 쓸면서 가고, 햇빛은 말리면서 간다 생활은 동그랗게 외면하면서 36.5℃를 건너간다
   벽에 갇힌 아이가 묻는다 방마다 배꼽이 있다 내가 묻는다 별을 가장 멀리서 수유하는 사람들이 왕관을 쓴다 벽은 허점을 내주고 완벽해진다 나는 탈선한 날개에서 죽는 기관사이다 가득 담긴 물을 길 위에 뿌리면 모든 춤들은 한결같이 캄캄해진다 바람이 건물 뒤편에 모여 있는 그늘들을 섬세하게 밟고 간다 쫓겨난 벌레들의 그토록 낮은 자세가 눈에 고였다가 살결을 따라가면서 잊혀진다
   꽃밭에서 아이가 묻는다 늙은 엄마의 동그란 창문에 내가 피어 있다 내가 묻는다 가장 긴 팔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가장 멀리 떠나가는 엄마가 된다 꽃향을 맡으면 엄마의 이름이 떠오른다 나는 탯줄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산꼭대기까지 번져가는 계절에 생긴 화상흔이다 아득한 길을 쉬엄쉬엄 걸어온 꽃받침이 배꼽을 어루만진다 환한 방 안에 꽃가루가 흩날린다 시체 속 창문 앞에서 엄마가 우주를 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