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證道歌를 읽다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sundo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98회 작성일 20-05-30 08:52

본문


성철 큰스님 살아 생전에 꼭, 한 번 뵈었으면 하는 바람(소망)이 있었다


모든 일은 行해야 하는 그 때가 있는 것 -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 찾기 힘든 것


그냥, 무작정 뵙기가 그랬던 마음


3천배를 어찌 하나 하는, 내 몸 사리기에 우선 했던 마음


만나 뵈었자, 뭐 신통한 소리 듣겠는가 하는 오만방자한 마음


계신 곳까지 가려니 시간도 안 나고, 너무 멀다는 이유의 게으른 마음


그런데, 이 내 못난 마음 헤아리다가 날밤 새겠다


아무튼, 큰스님이 사바세상에 남겨주신 글이나마 줏어 읽는다는 게


그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


'그림을 잘 그리려면 눈을 감고 노래를 불러라.
그림에는 눈길을 주지 말고 노래나 한껏 불러라' - 파블로 피카소


스님, 공양은 드셨습니까
견성(見性)하심도 여직 성성하시겠지요
꿈에서나마 스님을 뵈려고 삼천배를 하다가,
허리가 아파서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그저 멀리서 넌지시
스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것을,
공연한 발심(發心)으로
한 밤의 고요만 뒤숭숭하게 했습니다
스님의 주장자(拄杖子)에 한참 두드려 맞고 나서야
내밀(內密)한 곳을 향해 던진 겁없는 시선(視線)이
예리한 칼날이 되어 뒤늦은 가슴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스님 떠나신 후, 세상은
어두워졌습니다
'이 놈아, 내가 있을 때에도 항상 어두웠다'고
일갈(一喝)하시는 옥성(玉聲)이 귀에 쟁쟁합니다
스님이 말씀하신 산과 물은
속안(俗眼)으로 보기엔
온통 두루뭉실하기만 해서 아무리 눈을
까뒤집고 봐도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닙니다

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들은
산은 산이 아니었다가, 다시 산이 되고
물도 그렇다 합니다
그런데, 그 말도 기실(其實) 그냥 슬쩍
스님을 곁눈질한 말 같아 솔직히 마음에는
와 닿지 않습니다
다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건
수십 억년에 걸친 절망과 증오도
알고보면 원래는 희망과 사랑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스님께서 구태여 왜 그런 말씀을
미망(迷妄)의 중생들에게 하셨겠습니까

스님보다 더 큰 그림자가
독(毒) 오른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일주하더라도,
여전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겠지요

그래서, 오늘도 하염없이 스님이 그립습니다
아마도 속절없는 인간의 정(情) 탓이겠지요
스님께서 못마땅해 하시더라도
할 수 없지요


허망한 몸 안에 공소(空疎)한 피 모두 흘러
아무 기쁨 없이도 살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스님을 그리워하겠지요




* 성철(性徹 1912∼1993) 큰스님의 법어法語



[詩作 Memo]


깨달음은 영혼의 무게가 아니라, 주소이다
스님이 스님의 열반涅槃으로 반짝인다



승려. 속성은 이씨. 경상남도 산청(山淸) 출생.
1936년 해인사(海印寺)에서 동산(東山) 대종사(大宗師)에게
사미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38년 운봉화상을 계사(戒師)로 보살계 · 비구계를 받았고,
그 뒤 봉암사(鳳巖寺)에서 청담(靑潭) 등과 함께 수행하며
부처님답게 살 것을 결사하는 등 새로운 선풍(禪風)을 고양시켰다.
67년 해인총림(海印叢林) 초대 방장(方丈)이 되었고,
81년 대한불교 조계종 제 7 대종정(宗正)에 취임하였다.
81년 한국 선불교에 있어 주요 특징이었던 지눌(知訥)의 돈오점수
(頓悟漸修)를 비판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한
《선문정로(禪門正路)》를 펴내 불교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육조단경(六祖壇經)》 《전등록(傳燈錄)》 등 선문의 조사 어록을 중심으로
많은 법어를 이루었는데,
관념의 도그마에 빠지지 말 것과 견성(見性)의 체험을 강조하였다.
93년 해인사에서 입적하였다.
저서로 《돈오입도요문강설(1986)》 등이 있다.



 


증도가(證道歌) 퇴옹 성철 /번역



<증도가(證道歌)>는
당唐나라 영가 현각 (永嘉 玄覺 )( 647 ~713)스님이  지었습니다.
자신이 확철히 깨친 경계를 노래로써 표현한 것입니다.

영가(永嘉)스님의 휘(諱)는 현각(玄覺)이요, 자(字)는 도명(道明)이며, 성은 대(戴)씨이며,

절강성 온주부 영가현[浙江省溫州府永嘉縣] 사람입니다.

어릴 때 출가하여 안으로는 삼장(三臟)을 두루 섭렵하고 밖으로는 외전에도 널리 통달하였다고

전해지는 영가스님은 본래 천태종 계통으로 천태지관(天台止觀)을 많이 익혀서

그 묘를 얻고 항상 선관(禪觀)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천태종 팔조(八祖)인 좌계 현랑(左溪玄朗) 법사와는 동문(同門)이며,
나중에 도를 성취하고 난 뒤에도 서로 서신 왕래를 하였다고 합니다.

일찍이 온주의 개원사(開元寺)에 있으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지 내며 효순하기로 소문이 났으나,

누님까지 함께 지내니 두 사람을 보살피고 있다하여 온 사중(寺中)과 동구(洞口)에서 비방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별세하여 상복을 입고서도 누님을 떠나 보 내지 못하니 사람들의 비방이 더욱 심했으나

영가스님은 전혀 그런데 개의치 않았습니다.

영가스님이 천태종에 있으면서 선관을 닦고 선종과 비슷한 길을 밟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러면 왜 천태종에서 선종으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개원사 복도로 현책(玄策)이라는 선사가 지나가고 있었는 데 나이는 60여세였습니다.

이때 그의 누님이 발 밖으로 그 노숙(老 宿)을 보고,
"저 노스님을 방으로 청해서 대접했으면 좋겠다." 고 하였습니다.

영가스님이 얼른 나가서 노스님을 청했더니,
노숙 은 들어오지 않으려 하다가 스님의 간절한 청에 못이겨 방에 들어왔 습니다.

그 노숙과 법에 대해 여러 가지로 토론해 보니 자신의 견처나 노스님의 견처가 같은 점도 많이 있고

독특한 점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책스님은 영가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의 법사는 누구인가?"

"제가 <방등경론>을 배울 때는 각각 스승이 계셨으나,
뒤에 <유마경>에서 불심종(佛心宗)을 깨치고는 아직 증명하실 분이 없습니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노스님은 영가스님의 기상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또 그 누님에게도 협기(俠氣)가 있음을 느끼고 다음과 같이 권했습니다.

"부모와 형제에게 효순하는 일도 한 가지 길이지만,
당신은 불법의 이치를 밝히기는 했으나 스승의 인가를 얻지 못하고 있소.

과거의 부처님들도 성인과 성인이 서로 전하시고 부처와 부처가 서로 인가하였습니다.

석가여래께서도 연등불의 수기를 받으셨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천연외도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오.
남방에 큰 스승으로 혜능선사가 계십니다.
그곳으로 가서 발 아래 예배하고 스승으로 섬기시오."

그러자, 영가스님이
"다른 분을 증명법사로 모실 것이 아니라 스님께서 법이 수승하신 듯 하니

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면 좋겠습니다. 저를 위해서 허락해 주십시오." 하자,

현책스님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로서는 그대의 증명법사가 되기는 곤란하오.

지금 조계에는 육조대사가 계셔서 사방에서 학자가 운집하여 법을 받는 터이니

만약 그대가 가겠다면 함께 가리다."

그러나 영가스님은 누님을 홀로 남겨두고 떠날 수가 없어 망설였습니다.

그러자 누님이 하는 말이 "나는 다른 데 의지해서 지낼 수 있으니

나를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시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현책스님과 함께 떠났는데, 그 때에 영가스님의 나이는 31세였습니다.

그럭저럭 시흥현(始興縣) 조계산(曹溪山)에 이르니
때 마침 육조대사(六祖大師)께서 상당(上堂)하여 법문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에 영가스님은 절도 하지 않고 선상을 세 번 돌고 나서
육환장을 짚고 앞에 우뚝 서 있자니 육조대사께서 물으셨습니다.

"대저 사문(沙門)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어서 행동이 어긋남이 없어야 하거늘,

대덕(大德)은 어디서 왔기 에 도도하게 아만을 부리는가?"

육조스님의 이러한 말씀은 건방지게 와서 인사도 하지 않고 선상 만 세 번 돌고 턱 버티고 서 있기만 하니

그것은 아만심이 탱천하기 때문이 아니냐하는 힐난입니다.

그러나 육조스님이 영가스님 하는 짓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 번 슬쩍 법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그러자 영가스님께서 "나고 죽는 일이 크고, 무상(無常)은 빠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저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과는 뜻 이 다르므로 그 깊은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육조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남[生]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가"

이렇게 육조스님께서 반문하시니 이것은
'네가 지금 무상이 빠르다고 하니 그 무상(無常)의 근본을 바로 체험하여 깨치고,
남이 없음 [無生]을 요달하면 빠르고 빠르지 않음이 떨어져 버린 구경을 성취하게 되는데

왜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이에 영가스님이 답하였습니다.

"본체는 곧 남이 없고 본래 빠름이 없음을 요달하였습니다."

본체는 원래 남이 없으니 그걸 우리가 체득할 필요가 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대로가 남이 없고 그대로가 빠름이 없는데,
다시 남이 없고 빠름이 없음을 요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영가스님이 반박하자,

육조스님이 "네 말과 같다. 네 말과 같다." 고 인가하시니,
천여명의 대중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영가스님은 다시 동랑(東廊)으로 가서 육환장을 걸어 놓고
위의를 갖추어 육조스님께 정중히 예배하였습니다.

위의를 갖춘다는 것은 큰 가사를 입고 향을 피우고 스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영가스님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바로 하직 인사를 드리자
육조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리 빨리 돌아가려고 하느냐?"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거니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이지 않는 줄 아느냐?"

"스님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네가 참으로 남이 없는 도리를 알았구나!"

"남이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이는 남이 없음에 뜻이 있다면 남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뜻이 없다면 누가 분별하느냐?"

뜻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있는 그것부터가 분별하는 것이 아니냐는 육조스님의 질책입니다.

"분별하는 것도 뜻이 아닙니다."

분별을 하여도 심(心), 의(意), 식(識)의 사량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여대용의 나타남이라는 영가스님의 말씀입니다.

그러자 육조스님께서 선상에서 내려오시더니

영가스님의 등을 어루먼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장하다 옳은 말이다. 손에 방패와 창을 들었구나. 하룻밤만 쉬어 가거라."

그리하여 그 때 사람들이 영가스님이 조계산에서 하룻밤만 자고 갔다 하여
일숙각(一宿覺)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이튿날 육조스님께 하직을 고하니 몸소 대중을 거느리시고 영가스님을 전송하셨는데,

영가스님이 열 걸음쯤 걸어 가다가 석장을 세번 내려치고 말했습니다.

"조계를 한 차례 만난 뒤로는 나고 죽음과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노라!"

선사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의 소문은 먼저 퍼져서
모두들 그를 '부사의(不思議) 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그의 가(歌), 항(行), 게(偈), 송(頌)은 모두가 그의 누나가 수집한 것입니다.

영가스님은 선천(先天) 2년(서기 713년) 10월 17일에 입적하시니 세수 39세였으며,

시호(諡號)는 무상대사(無相大師), 탑호(塔號)는 정광(淨光)이라 하였습니다.

그해에 육조스님께서도 돌아가시니 세수 76세였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흔히 어떤 사람들은 이 법담(法談)을 평하기를,
영가스님이 육조스님보다 나은 듯하고 육조스님이 말에 몰리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가스님이 육조스님보다 수승한 사람이 아니냐고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평을 하면 영가스님을 잘못 본 사람입니다.
영가스님 자신이 <증도가(證道歌)>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조계의 길을 깨친 뒤로 나고 죽음과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다."고 하여,
조계산에 있는 육조스님을 찾아와서 근본을 확철히 깨쳤다고 자기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인(古人)들은 영가스님이 깨친 대목을 두고 말하기를 앞의 법담에서,

"어찌하여 남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 하지 못하는가?"
하는 말 끝에서 깨쳤다고 봅니다.

영가스님이 자기 스스로 조계의 길을 확실히 깨치고 난 뒤에는
나고 죽음에 자재하다고 말씀하셨으며, 자기가 평생동안 연구했던 천태종을 버리고

육조스님의 조계 선종의 입장에서 법문하였고 저술도 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육조스님께 와서 깨친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영가스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고

선종에서 깨친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영가스님의 행장(行狀)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살펴보고
<증도가(證道歌)>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하겠습니다.

영가스님이 육조스님을 찾아가서 확철히 깨치고,
깨친 경지에 의지해서 <증도가>를 지었는데, 천태종이나 다른 교가의 사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천태종에서는 교리적으로 볼 때 맞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하여
이것이 일종의 미친 견해이지 바른 견해는 아니라고까지 혹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종에서 볼 때는 <증도가>가 선종사상을 대표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므로,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은 선종을 모르는 데서 하는 말이지 바른 길을 아는 사람이면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절대로 생각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禪)과 교(敎)의 관계가 <증도가>에서 더욱 더 완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선(禪)에서는 '한 번 뛰어 넘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간다[一超直入如來地]'고
많이 주장하는데 대해서, 교[敎]에서는 '점차로 닦아 성불하는 것[漸修]'만을 근본으로 표방하므로

서로가 정반대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영가스님의 <증도가>에 대해서 천태종에서 가장 많이 공격했지만,

그 공격도 일시적인 것이 되고 말았으며,

영가스님의 <증도가>는 실제로 도 닦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만고의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증도가(證道歌)>라 하였는데 '증(證)'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살펴 봅시다.

'증(證)'이란 구경(究竟)을 바로 체득함을 말합니다.

깨달음[悟]에도 증오(證悟)와 해오(解悟)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해오(解悟)란 견해(見解), 지해(知解)를 말하는 것으로, 알기는 분명히 알지만
실제 마음으로 체득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얼음이 본래 물인 줄은 알았지만 아직 녹지 않고 얼음 그대로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얼음을 녹여 물로 쓰고 있지는 못하듯이 중생이 본래 부처인 줄은 분명히 알았지만

번뇌망상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서 중생 그대로인 것, 그것을 해오(解悟)라고 말합니다.
'증오(證悟)'란 얼음을 완전히 녹여서 물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 자체도 볼 수 없는 경계,

따라서 중생의 번뇌망상이 다 끊어져서 제팔 아뢰야 근본무명까지 끊어진 구경각을 말하니

곧 실지로 성불한 것, 견성한 것을 증오(證悟)라 하고 간단히 줄여서 증(證)이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가(敎家)에서든지 선가(禪家)에서든지 증(證)이라 하면

근본적으로 체달한 구경각(究竟覺)을 말하는 것이지

그 중간에서 뭘 좀 아는 걸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통된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 노래에 '증(證)'자를 붙였냐 하면,

선종에서 깨쳤다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증오(證悟)'를 근본적으로 삼았지

'해오 (解悟)'로서는 근본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가에서 깨쳤다고 하는 것,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한다는 것은
'증오(證悟)'이지 '해오(解悟)'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조(普照)스님도 처음에는 선가에서 전한 법을 '해오(解悟)'라고 잘못 보았다가

나중에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이라든가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같은 데서는

선이란 '증오(證悟)'이지 '해오(解悟)' 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가에서의 근본 표본은 '해오(解悟)'가 아닌 구경각이며,

선가에서의 깨달음[悟] 이란 구경적으로 체달한 것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노래 이름부터도 '증(證)'이라 하였지

'해(解)'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종에서는 언제든지 깨친 것을 '돈오(頓悟)'라 하는데,

"돈(頓)이란 망념을 순식간에 없애는 것이요 오(悟)란 얻는 바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대주(大珠)선사는 설파하고 있습니다.

근본 무명인 제팔 아뢰야는 무기무심(無記無心)의 마계(魔界)까지 완전히 벗어나서

대원경지(大圓鏡智)에 들어가 진여본성을 확철히 깨친 것이 곧 '증(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가에서는 그 중간적인 것을 '깨달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설명하는 <증도가>를 이해할 수 있지 '증오(證悟)'와 해오(解悟)'를 혼동해서는

영원히 <증도가>를 모르고 마는 것입니다.

이 <증도가>는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해서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달마스님에서 육조스님까지,

그리하여 오가칠종(五家七宗) 으로 내려온 정안종사(正眼宗師)의 증오처(證悟處)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증(證)'이라 한다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합니다.

그러면 어째서 도(道)라 하는가?

도(道)를 보리(菩提)라 각(覺)이라 하는데 <증(證)>을 근본으로 삼았으므로,
이 도(道)라 하는 것은 증(證)한 도(道)를, 구경각을 성취한 그 구경처(究竟處)를 말합니다.

즉 도(道)란 구경을 깨친 '증(證)'한 도(道)이지 중각적인 도(道), 해(解)한 도(道)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그러면 구경각인 도란 무엇인가?

"무심이 도라고 일컬어 말하지 말라.
무심도 오히려 한 겹 두터운 관문이 막혀 있느니라.

[莫道無心云是道하라 無心猶隔一重關이니라]"

도는 무심과 통합니다.

우리가 실지로 공부해서 대무심지(大無心地)에 들어가서 구경각을 바로 성취하면 그만인데,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못하고 제팔 아뢰야 무기무심에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그 폐단을 막기 위해서 제팔 아뢰야의 무심 즉 멸진정(滅盡定)의 무심은 도(道)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멸진정의 무심도 아주 벗어나서 제팔 아뢰야의 근본 무명까지 끊어진 곳에서 구경각을 성취하여

대원경지가 현발한 이것이 도(道)인 것이며, 진연본성을 바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證)'이 곧 '도(道)'이며 '도(道)'가 곧 '증(證)'이라 하는 것입니다.

 

달마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밖으로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外息諸緣하고 內心無喘心如墻壁하사와 可以入道니라]"


그러면 마음이 담과 벽 같아야 한다고 하니 목석과 같고 장승과 같은 무심지에 들어가 버리면

그것이 도(道)냐 하면, 그것이 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제팔 아뢰야 무기무심이 장애가 되어

근본적인 구경무심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참으로 구경의 대무심지에 들려면 멸진정의 가무심(假無心),

거기서 한 관문을 더 뚫어서 구경무심을 성취해야 비로소 바로 도(道)를 깨친 것입니다.



댓글목록

sundol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sundo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현실생활,
그건 눈 앞의 일이어서
도피도 용이하지 않지요 ( 안 그렇습니까)

다만, 문제는
그 끔찍하게 여기는 현실생활이
거의가 미몽 迷夢에 거 居한다는 거

잠을 자면서 꿈을 꿀 때는
그 꿈이 지독한 현실이지만
잠 깨고 보면,
알뜰하게 현실로 여겼던 꿈도
한낱 물거품 같은 것

하여,
그 같은 생각은
그저 단순히 말하기 좋은
현실도피와는 십만팔천리라는
관점도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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