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에 휩싸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29회 작성일 20-06-23 11:20본문
노을에 휩싸이다 / 백록
울긋불긋한 저물녘을 가만히 지켜보노라니
개나리가 제 꽃말처럼 비칩니다
당신의 희망은 나보다 높고 깊었다며
진달래가 제 꽃말처럼 비칩니다
당신의 사랑은 나보다 참하고 애틋했다며
그 사이로 초록이 얼씬거립니다
당신은 꽃이 아닌 잎새지만
제 몸에 꽃을 품고 늘 푸르고 싶은
청춘이랍니다
불현듯, 생전 본 적 없는 묘향산 파랑새가 초록새처럼 날아갑니다
붉은 법복의 서산대사가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 행간으로 왕과 주고받던 시어들
선문답처럼 흐릅니다
‘잎은 붓끝에서 나왔고 뿌리는 땅에서 난 것 아니네
달빛 비쳐도 그림자 드리우지 않고 바람이 흔들어도...’
‘소상강 변 우아한 대나무가 임금님 붓끝에서 나왔네
산승의 향불 사르는 곳에서 잎새마다 가을바람에...’
어설픈 읊조림 속을 어찌어찌 머뭇거리던 와중에
눈여겨보란 듯 뚝 떨어지는 불꽃
저건 필시, 꽃이 지는 게 아닙니다
붉은 씨가 묻히는 거랍니다
새싹을 틔우기 위한
댓글목록
김태운님의 댓글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메기 유감 / 백록
이곳 사람들은 개끝 갯돌에 간신히 붙어사는 너를 두고
보말이라고도 부르는데
언뜻, 보물 같은 말씀인 듯
혹은, 보살의 말씀인 듯
그럴듯하게 들리는데
그 진상을 모르는 육짓사람들은 이들을 보고
별 볼 일 없는 소라 새끼라 무시하거나
보잘것없는 고둥의 족속이라 벅벅 우기며
업신여기길 식은 죽 먹듯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이름만큼이나 잘잘하고 수두룩한 너희는
이 섬의 높을 고씨는 분명 아닐 테고
어찌하여 고독한 고집불통의 성을 가진 고씨더냐
어쩌다 절절한 추억 같은 메기의 이름씨더냐
네 고향은 무슨 까닭으로 짠내 나는 개끝이더냐
네 집은 무슨 사연으로 시커먼 갯돌이더냐
파도에겐 도대체 무슨 죄를 졌길래
툭하면 그토록 얻어맞느냐?
마침내 말라 죽어서야
제 속을 몬딱 비워버려서야
비로소 제 소리를 내는
이 섬의 숨비 같은 삶
그래서 고동이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