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칼코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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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540회 작성일 20-07-04 11:07본문
나의 데칼코마니 / 백록
출생부터가 같다
그와 나는 태평양으로 가는 한바당
물의 자궁에서 태어났으므로
물론, 무덤까지도 같은 섬에 예정되어 있는
할망의 자식들이므로
조금 다르다면
그는 설문대할망이 가꾼
큰 불꽃의 그림자로 얼씬거리지만
나는 울 할망이 뿌린
작은 불씨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
눈을 뜨는 순간 그의 눈도 어느새 나를 쳐다보고 있다
코를 내밀면 그의 코도 나를 맡고 있고
귀를 열면 그의 귀도 나를 듣고 있고
입을 벌려 중얼거리면 그도 나를 향해 무언의 소리를 지른다
허구한 날, 주거니 받거니
오늘도 그는 나처럼
이 섬의 바람과 구름 그리고 세월을 보고 느끼며
그 냄새를 맡으며 그 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숨 고르고 있다
그의 표정이 언젠간 하늘로 오를 거룩한 날갯짓이라면
나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지느러미 꼴이지만
아무튼 둘은 매우 닮았으리라
아니, 닮고 싶은 거다
댓글목록
sundol님의 댓글
sundo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데칼코마니 décalcomanie..
사실 이 소재 素材는
너무 많은 시인들이 우려먹어서
다소 식상 食傷하기도 하지만
오늘, 올리신 시에서
종전의 많은 이들이 입가 가득히 게 거품에 침 튀기며
테칼코마니를 말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그 어떤 새로운 경지를 맛보고 갑니다
좋은 시, 감사합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게거품 같은 데칼코마니라///
넘치는 댓글 감사합니다
답글 삼아 부족한 글 하나 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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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광중壙中 같은 골방에서 죽은 시인의 별을 헤다가 / 김태운
별안간, 별 무리가 그리운 밤이다
그들과 손가락을 꼽으며 놀던 옛 마당은 어느덧 온데간데없고
그 대신 옥상을 기웃거린다
내일 모래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인 듯하여
칠칠맞은 그 조짐이라도 슬몃 훔쳐보려는데
무심한 하늘은 아직 컴컴하구나
근처 바다의 기슭을 헤매는 별들은 반짝이는데
그들을 노리는 포세이돈도 희끗거리는데
공중이 시커먼 걸 보니 떼까마귀들 우글거리는 것 같은데
간만에 오작교라도 떠올리려면
지루한 달력 한 장 더 찢어야겠구나
별수 없이 안드로이드가 되어 안드로메다를 수소문하고 있다
그 어드메쯤에서 내려다보고 계실
나의 근친들을
- 별 하나에 추억(追憶)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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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일부 차용
sundol님의 댓글의 댓글
sundo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시마을이 아무리 퇴색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시마을은 시마을인데
- 덩치는 무지 크지만 온통 디룩한 <비겟살덩이>지만요
하지만, 진짜 시인님 몇 분들이 다 허물어져가는 이곳을 지탱해준다는 생각요
언제나, 백록 시인님의 시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