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기러기 아기 기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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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17회 작성일 20-08-04 00:02본문
어미 기러기 아기 기러기
내가 하구(河口)에 살 때 일입니다.
그날은 낮은 데서 바라보자면 노을
피 흘리는 하늘이 너무 고와서
갈대밭 속에 오히려 더 깊이 숨어
기러기떼 날아가는 걸 훔쳐보았더랬습니다.
가야할 곳은 아직 멀다고
아기 기러기를 재촉하는 어미 기러기 울음이
멀리서 들려왔습니다.
어미 기러기는 육체를 어디에 버리고
하얀 뼈만 남아 아기 기러기와
함께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아기 기러기는 눈 멀어
어미 기러기 소리만 따라
저 막막한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려는데,
갈대밭 위에 우뚝 서서
아기 기러기에게 엽총을 겨누던 남자가
기어이 아기 기러기 옆구리에
납탄을 박아넣는 것이었습니다.
옆구리에 피를 쏟으며
아기 기러기가 비틀거리다
땅에 떨어지려는 찰나였습니다.
어미 기러기가 아기 기러기의
부리부터 눈알, 꼬리깃털까지
모두 씹어먹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뼈 한조각 남기지 않고
죄다 씹어먹어버렸습니다.
남자는 손에 텅 빈 탄피 하나 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미 기러기는
뱃속에 태아가 된 아기 기러기를 품고
활활 불타오르는
노을 속으로 멀리 사라졌습니다.
나는 내가 본 것을 어머니께 말씀드리려고
집으로 달려갔더랬습니다.
나는 미끄러지며
집 뒷산을 기어올라갔더랬습니다.
거대한 격랑이 온산천을 뒤흔들겠다는듯
보랏빛 자운영들이 단단한 햇빛과
부딪치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투명한 것이 깨지는 소리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 사이사이에서
깨진 조각들 몸부림치는 숱한 궤적들마다
어머니께서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계셨습니다.
댓글목록
시월님의 댓글
시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
옆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은
이해 당사자인 두 경기장 보다 2수 3수 앞을 본다더군요
막상
훈수를 잘 두던 사람도
게임의 당사자가 되면 형편없이 두면서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가 보여짐니다
남녀노소 읽는다는 생텍쥐베리 같은 이숍 우화 같은<<<
노을 속에 피 흘리는 하늘빛이 너무 고와서
이 부위
오히려 갈대 속에 더 깊이 숨어
1연만 그렇게 거리는 부위가 있더군요
,,,,훔쳐보았드랬습니다
,,,,달려가더랬습니다
흐름상에
아기 기러기는 눈 멀어 ?
어미 기러기가 아기 기러기를 죄다 씹어먹어버렸습니다
보르헤스인지 뭔지 주술적 리얼리즘
혹은 우리네 샤먼니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했던가? 무슨 토속적인
엽총과 납탄
사냥꾼이 잡아먹어야 할 테인데
어미가 아기를 잡아먹는다는 설정이 뭔가를 말하는지 감이
잡힘니다
죄 없이 십자가에 박힌 2000년 전의 남자
옆구리
글쎄요? 요즘 흐름이 그렇습니까?
그냥 저냥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보다 감니다
좌뇌 우뇌 오가는 자그마한 호두알 주름이 더 깊어지는 듯 하여
좋습니다
모두 씹어먹어버리는 것
죄다 씹어먹어버렸습니다
*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동화라기보다 자기 고백 정도로 생각하고 썼습니다. 그리고 이 시에서 저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드렸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