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장에 너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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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595회 작성일 20-08-13 10:42본문
폐차장에 너를 보내며
폐차장에 보내려니
그냥은 안된단다
현대캐피탈에 저당 잡힌 것
해지하지 않으면 절대 안된단다
내가 중고로 살 땐
보이지도 않던 이력이
이별 앞에서야 보이는 거였다
도로에서 맞부딪치고 또 쥐어터지며
늦은 밤 야간자율학습 마친 아이들 마중하고
허리 아픈 아내, 늙으신 어머니 태우고
달리고 또 달렸던 네가,
마침내 멈추고야 말았다 그래서
퍼져 널브러진 1999년식 LPG용 싼타모,
이별하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근저당 해지서류를 만들어주며
차량등록사업소의 위치를 안내해주던
캐피탈 여직원의 상냥한 미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10분 남짓 지하철 상가를 걸어 도착한
사업소의 시끌벅적한 소란 속에서도
유유히 도장 꾹 누르며
"자, 이젠 모든 절차가 끝났습니다"
라고 말하던 아가씨의 눈웃음을 뒤로하고
나는 울렁거리던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이별에도 절차가 있다는 것
쉬운 이별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해지서류를 손에 든
나를 깜짝 놀래키며 때렸다
그래서, 여태껏
나도 모르게 근저당 설정된 삶은 없었는지,
다시 생각하면서,
이별가 한 곡 부르지 못하고
쓸쓸히 너를 폐차장으로 보내며,
댓글목록
날건달님의 댓글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시의 내용이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읽어 내려가는 내내 맛깔스러움을 느꼈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시가 참 좋습니다.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군요. 올려주신 시처럼 시큼하고 새콤한 메뉴 뭐 없을까요? ^^ 잘 읽고 갑니다. 시인님!
너덜길님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는 시리얼에 우유 타서 간단히 점심 대신했는데,
무더운 날 잘 챙겨드시기 바랍니다.
읽어 평해 주신 말씀 고맙습니다.
라라리베님의 댓글
라라리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별에도 절차가 있다는 것
오래동안 같이 했던 모든 것들은 떠나 보낼 때
절차가 필요하지요
많은 상념이 뒤범벅 되어 잊기까지는 또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생활에서 체험한 부분을 표현해 내기가
참 어려운데 잘 풀어내셨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에 머무르게 하네요
계속 좋은 시 기대하겠습니다^^
너덜길님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여기 시마을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시의 공간이라고 늘 아끼는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라라리베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일정 수준 이상의 시들이 비옥한 토양을 이루고 있음을 압니다.
오래 좋은 시 많이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몇몇 안 보이는 분들도 복귀해 주셨으면 고맙겠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