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흙을 만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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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478회 작성일 20-08-30 00:04본문
세상은 그렇게 말랑말랑한 곳이 아니야
찰흙을 만지면 영화 변호인의 대사가 떠올라,
바닥에 던지면 바로 땅이 되고 영토가 되고 대륙이 되는
아직은 내 손바닥 안에 있어 말랑말랑한
무심코 꾹 누른 손가락의 모양과 기울인 힘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나의 영토 한 덩어리,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찰흙을 만지면 안개에 젖은 흙을 한 줌 쥐고
간절하게 나를 불러내던 음성이 만져 진다
지금쯤 거의 절반은 흙으로 돌아가 있는 내가,
아직 세상에 온전히 편입되지 못하고
말랑말랑해서 뜯기고 짓이겨지는 내가 만져 진다
찰흙을 만지면 하늘을 향해 눈을 크게 뜨고
그렁그렁 증발 시키던 따가운 물기가 만져 진다
천도의 불길을 견디며 손톱이 튕겨나가도록
딱딱하게 구워져 가던 심장이 만져 진다
세상이 말랑말랑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야
찰흙을 만지면 자전축에 몸을 끼우고
태양을 쫓아 스스로를 굽는
거대한 찰흙 덩어리가 만져진다.
찰흙을 만지면 흙의 말랑말랑한 틈새로
실뿌리를 뻗어 내리는 샤프란 흰 꽃잎이 만져 진다
찰흙을 만지면 내시경으로 비춰주던
팔십 노모의 연분홍빛 대장이 만져 진다
휴지 너 댓 칸을 뜯어 쥐고 뒤로 팔을 돌리면
뭉텅한 찰흙을 밀대로 평평하게 밀고
안과 밖이 생기기도 전에 먼저 병뚜껑이나 동전을
꾹 누르고 뚫어 놓은 구멍이 만져진다
댓글목록
빛날그날님의 댓글
빛날그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모든 시는 첫행에서 결정된다는 공식을 너무 잘 아시는 듯...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닌 것처럼 시단도 그렇게 허술한
곳이 아니어서 열심히 읽고 써서 몸으로 체득하고자 이 여름
달구고 계시는 나무님, 오늘도 홧팅! 입니다.
싣딤나무님의 댓글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사합니다. 사실은 시단이 허술하건 말건 흥미 없어요.
낑낑대며 턱걸이로 그기 속하는 꼴도 우습쟎아요.
공식 같은 건 배운 적도 없고 잘 모릅니다.
다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고
시작하고 싶을 뿐입니다.
어릴 적 이발관에 걸린 풍경화 같은 시도 좋지만
저는 제 피부에 가까운 것들에 눈이 가는
말초신경 계통의 인간입니다.
참고로 공식이나 뭘 알고 쓰는 건 아니고
어떻게 쓰다보니 뭔가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으로 ㅎㅎㅎ
힘을 얻고 열시미 하겠심다. 홧팅!
작은미늘barb님의 댓글
작은미늘barb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흉내 낼수 없는 묵직한 사유와 깊이를 감히 짧은 빗자루가 문앞을 쓸다 갑니다.
어려운 시기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늘 훔쳐 봄을 용서 하십시요 꾸뻑~^^
싣딤나무님의 댓글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발 자주 좀 훔쳐 봐 주시길,
비 옵니다. 언제와도 비는 좋은데, 올해는 좀 부담스럽네요.
화초들에게 물 주는 일을 대신 해줘서 고맙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