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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수사학 / 박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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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28회 작성일 15-07-0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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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수사학 / 박하린



나무는 인내심이 깊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고문하듯 겨우내 흔들어대도
뿌리보다 더 깊은 바닥으로 입을 숨기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언어의 조탁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말은 절대 꺼내지 않는 나무
나무처럼 말을 삭혀 본 적 있는가?
그러므로 나무의 화법은 가십이 없다
다 다듬어지면 그때야 뾰족이 잎을 열어 입이 되기까지 침묵할 줄 아는 나무
말 많은 은사시나무도 이 규칙만은 철저히 지킨다는 수사학
사철 말을 많이 하는 나무의 입은 잎이 작은 이유다
잎이 입이 되어야 말을 시작하는 나무
비가 오면 비의 화법으로
바람이 불면 바람의 화법으로
어쩌다 새들이 앉았다가 가면 커버드가 열렸다 닫히는 플루트처럼 인사를
빼놓지 않는 잎 입
눈을 열어야 말씀이 들리고
귀를 닫아야 보이는 언어
장맛날이면 며칠을 두고 경전 일독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 새벽은 묵언 수행하기도 하는 화법
그러다가 말씀이 겅중거리거나 나풀대는 날
잎을 닫아 입을 내리는 나무
나무 밑에는 뿌리보다 더 깊은
언어들이 수북하다
나무가 클수록 침묵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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