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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선廢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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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그믐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618회 작성일 15-09-16 12:07

본문

폐선廢船


1.

물이 드는 밑창난 삶이다
육신은 삭아 문풍지같은 피부로
바람이 차가웁게 스미는
독거의 늪지
여기가 무덤이다 샛강같은 골목 끝
햇살도 배급받는 궁핍
뚝뚝 떨어지는 빨랫물처럼 생은
젖어 마를 줄 모르고

바닥으로부터
어둠이 고이는 곳 폐선의 내부
헐고 틀어진 이물은 어느 방향인가
누우면 보이는 백내장의 뿌연 우주

그 너머,
때 낀 창이 하나 떠 있고


2.

영차 노 저어라 어영차
푸른 근육으로 빛나던 뜨거운 계절
강물을 시퍼렇게 가르며
뱃심 짱짱했던 바닥의 근성
오르내리던 숱한 인연 그치고
여울마다 튕기던 파편
살점인 줄 모르고 헐값에 팔던 시절
그래도 강물에 발목 적시며
언젠가는 강물에 노을처럼 곱게 풀리고 싶던
단술같은 꿈의 한 자락


3.

부러진 노櫓로 어둠 속을 더듬는 혈연
씨줄도 날줄도 걷힌 까만 가계家系
더는 저어 나갈 수 없어
쿨럭거리는 막다른 골목
때 낀 창 하나 가만히 눈을 감는다
팔려나갔던 살점들 물안개로 자욱히 돌아와
어머니처럼 야윈 몸을 보듬어오는
늪지의 폐선, 그곳에서
흰 새 한 마리
푸드득
환한 노을 속으로
들어간다
낡고 지친 몸 한 척
물빛 하늘로
스윽 밀려 들어간다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5-09-19 11:36:37 창작시에서 복사 됨]
추천1

댓글목록

그믐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그믐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태운.님, 들여다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쓸쓸하게 읽으셨다니 더 고맙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 진 백석의 말처럼,
높지는 못하되 외롭고 쓸쓸하긴 해서 시를 씁니다.
머지않아 거리엔 찬바람만 가득하겠지요.

그믐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그믐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이쿠,, 너무 비약을 ㅎ 그저 이 시대의 가장 낮은 곳에서의 삶과 죽음이라는 숙명적인 주제에 폐선의 이미지를 등가물로 쓴 것입니다. 아 제가 제 시를 설명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님의 말씀이 좀 비장하게 들려서 몇 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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