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스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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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465회 작성일 15-11-04 23:38본문
옵스큐라
삽날에 찍힌 붉은 살점 딛고 밤이 왔다
고래 뱃속으로 별들이 녹는다
불 꺼진 방엔 검은 달 흐른다
。
고요한 색으로 물드는
사색이 된 풍차들
바람이 부려놓은 돌부스러기는
먹줄 아래로 흩어져
치어 눈을 달고 우글거리면 된다
。
타인의 방을 껴안고 깊어지는 밤은
한쪽으로 부는 계절풍
몹시 울부짖다가 달의 슬하에 잠기면 된다
。
어둠을 써레질하는 파도소리
밤 안쪽으로 긋는 금줄
돌날 끝에서 휘적휘적 두 팔을 돌리면
하얗게 깨지는 해안선
이것은 눈알을 잃은 풍차의 다른 이름
。
서식지를 잃은 꽃말처럼
오늘은 서로의 늑골에 웅크리자
그리하여 캄캄해지자
어둠상자 속으로 스며 찰칵,
。
해풍이 몸서리치게 불어오면
리아스식 슬픔을 깎아내리는 달빛
。
상자 속에 우므러진 날개를 뉘고
빈 뼈를 들고 활강하는 새들
부러진 깃털을 모아쥐면
역광 속으로 캄캄해지는 그림자들
。
수천 조각으로 깨진 달이 검은 수평선을 밀고
불어온다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대로 좀
김사인
금 간 브로크의 키 낮은 담
삐뚤빼뚤한 보도블록 곁으로
고양이 한마리 어슬렁거리고
귀가하던 늙은 내외가 구멍가게 바랜 파라솔 아래 앉아
삶은 달걀과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는 곳.
우편함 위에는 포장이사 열쇠수리 딱지들 옹기종기 붙어 있고
반쯤 열린 철대문 안쪽으로
문간방 새댁네의 부엌세간들이 비치기도 하는 곳 얌전한 곳.
직장 없는 안집 둘째가 한번씩 청바지에 손을 꽂고 골목 이쪽저쪽 훑어보다가 침을 칙 뱉고 다시 들어가는 곳.
대문 돌쩌귀엔 솔이끼도 몇 돋아 있는 곳.
스티로폼 상자에 파와 고추 두그루씩과 상추 몇포기가 같이 사는 곳.
떨어진 자전거 바퀴 하나가 몇년째 모셔져 있는 곳.
몽당비가 잘 세워져 있는 곳.
이 하찮은 곳을 좀
부디 하찮은 대로 좀.
`
안희선님의 댓글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obscura, 어두운 상자 같은 방.. 아니, 이 닫힌 세상
그 암상暗箱에서 펼쳐지는 이미지가 절묘합니다
생의 고통이랄까, 혹은 고통의 광장인 <옵스큐라>에 갇힌
삶의 모습에 대한 관조의 자세가
시인의 심상사고를 통해 보다 감각적으로
묘사된 느낌
" 해풍이 몸서리치게 불어오면
리아스식 슬픔을 깎아내리는 달빛 "
그래도 그 달빛이 있어,
이 폭압적인 세상의 횡포로 부터
잠시나마 숨을 돌리는지도..
비록, 닫혀진 상자는 닫혀진 채
도무지 열릴 생각을 안 할지라도
가만 살펴보면 오래 전에 달빛 수천 조각이 밀고 들어간
통로가 나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또 !
그 통로를 통해 언젠가는 햇빛도 " 아! 여기구나" 하며
따라 들어갈 날이 있으리라 여겨지네요
시인의 의식 위로 떠오르는, 내면화內面畵가
처연하면서도 곱습니다
함께 올려주신,
김사인 시인의 또 하나의 <obscura>도 참 좋으네요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요 (뭣보담두 건강이 제일입니다)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과거는 삭제 버튼 누르면 간단히 소거되고
미래는 전설을 쓰면 되고
어둠 또한 빛이 조작하는 건 아닐까 싶네요
오랜만에 쓴 글이라 가닥이 없네요.
늘 환한 날 건강하고 다복하게 지내실 바랍니다.
제가 교육중이라ㅋ
고맙습니다.
동피랑님의 댓글
동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모호한 그러나 비타민이 들어 있어 영양가 높은 말씀.
우유는 부단해도 제맛은 구수한데 나랏 말쌈이
역사에 서로 사맞디 아니하여 언어로 니킥 한방 먹이고
교육에 임하다. 수능이 일주일도 안 남았네요.
활연 님의 의젓한 큰딸,
그동안 절차탁마한 실력 마음껏 발휘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