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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짐승과의 긴 동거 / 박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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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27회 작성일 15-07-0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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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짐승과의 긴 동거 / 박하린



꽃이 제 몸인 봉오리를 찢어야 꽃을 피우듯
얼마다 더 가려워야
얼마나 더 긁어야
한 송이 꽃이 피려나?
슬픔이 슬픔을 흠씬 두들겨 팼을 때 비로소
웃음이 실실 쏟아졌던 것처럼
얼마나 더 허공을 바라보며
바람을 사랑한다고 중얼거려야 날개가 돋을 수 있을까
흙을 사랑하다가
흙을 사랑하다가 흙을 먹는 지렁이가 된 것처럼
얼마나 더 울어야 가슴에 눈물이 마를 것인가
동지 밤이 하얗도록 긁고 긁어도
새벽이면 또 가려운 개창(疥瘡)같은 통증이여
소나기가 올 때마다 하늘을 보지만
뜨지 않았던 무지개를
말라붙은 손톱 밑 핏자국에서 찾는다
그림자처럼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이 짐승의 집요에
심마진(蕁麻疹)처럼 끓어오르는
해독 불가한 눈물로
꼭꼭 눌러쓴 잉크만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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