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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2,235회 작성일 15-07-18 00:21본문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5-07-19 12:16:37 창작시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별과의 일박
이성목
너를 사랑하는 날은 몸이 아프다
너는 올 수 없고 아픈 몸으로 나는 가지 못한다
사랑하면서 이 밝은 세상에서는 마주 서지 못하고
우리는 왜 캄캄한 어둠속에서만 서로를 인정해야만 했는가
지친 눈빛으로 아득하게 바라보고 있어야 했는가
바라보다가 죽어도 좋겠다고 너를
바라보다가 죽어도 좋겠다고 나는
한 숨도 못 자고 유리 없는 창문을 열었다가
닫았다 우리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어디선가 별이 울음소리를 내며 흘러갔고
어디선가 꽃이 앓는 소리를 내며 돌아왔다
그건 언제였던가
어깨 위로 비가 내리고 빗방울 가슴치며 너를 부르던 날
그때 끝이 났던가 끝나지 않았던가
울지 말자 사랑이 남아 있는 동안은
누구나 마음이 아프다고
외로운 사람들이 일어나 내 가슴에 등꽃을 켜준다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 별빛을 꺼준다
이 시는 사랑시 문법으로 보자면, 애틋하고 절절하다. 유행가 가사처럼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운운으로 읽힌다.
그런데 너를 '어떤 지극한 대상', 나는 그것을 '흠모하는 병자'로 읽으면 사정은 또 다르다. 가령, 너를 '아직 온전하지 못한 세상 또는 불평등한, 도무지 좋아질 바 없는 세상'으로 읽고, 나를 '간절함은 있으나, 가려 하지 않는 병든 우리'로 본다면, 이 시는 아름다운 세계,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은 있으나 가지 않은, 갈 수 없는 분절된 길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떤 각도에서 접하고 이 시를 사랑할 것인가를 물으면, 나는 '아픈 사랑의 노래'로 읽을 것이다. 그것으로도 이 시는 충분하다.
.
시엘06님의 댓글
시엘06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응시한다는 것은 사건에 말려든다는 것과 동일어가 아닐지요
즉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세계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고 최종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시는 세계에 참여하는 방식의 독특함, 그래서 그 구원 방식의 독특함, 이런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네요.
행마다 그 미묘한 언어의 떨림이 참 좋습니다.
저도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를 모티브로 하는 글을 한번 짓고 싶은데, 그 생각을 빨리 옮기고 싶네요.
활연님이 자극을 주셨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주말 아침 다녀가셨네요. 이 글은 비토로 옮겨서 낱낱이 해부해 바치겠습니다. 자폭인지 공부인지 모르겠으나,
애매한 것들이 많아서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6행, 구원은 도착하지 않았지
한용국, 삭망전, "애도는 도착하지 않았다"에서 차, 변용.
(쓸 당시는 시와 시인이 생각나지 않아, 비평방에서만 내역을 밝힘)
삭망전(朔望奠)*
한용국
망자들의 밤이 왔다.
애도는 도착하지 않았다
검은 배들이 지나갔다
돛대마다 주검이 펄럭였다
달에 실핏줄이 번졌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문지방 앞에 모여 웅성거렸다
거미들이 울면서 지나가고
여러 번 일어날 일이 시작되었다
문밖의 나뭇가지들은
허공을 할퀴며 자라났다
애도는 도착하지 않았다
누군가 피리를 불자
어둠의 망막을 찢고
붉은 혀들이 튀어나왔다
얼굴을 바꾼 사람들은 웃었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울었다
설명하려는 자들에게는
흰 귀가 자라났다
배후는 사라지고
체위만 남아 스크린 위에 떠돌았다
몇 줄의 글을 쓰는 자들이 있었지만
잉크의 농도를 감당하지 못했다
검은 꿈들이 걸어다니는 밤이 왔다
어디서나 총성이 자욱했다
애도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벗어놓은 신발마다
맹독을 품은 나비들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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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중에 있는 집에서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에 지내는 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