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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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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9회 작성일 18-10-2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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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달은 겨울밤에야 하얗다, 눈 내리는 벽이 투명해진다. 투명해지도록 늙은 것이다. 


저렇게 조요로이 눈발 속에 매화는 주홍빛 찢어진 꽃잎마다 내 목숨 무엇이 움트려는지. 흰 당나귀 한 마리 절룩절룩 찾아오는 길. 지붕 바깥은 수천마리 배추나비떼들 위로 아래로 수직이동하며 마음 산란한 소리를 흡수하고 있다.  


나타샤여 너도 나도 당나귀도 이 빈 집을 겨울삼아 고운 풍화작용으로 늙었다. 죽도록 청명한 달빛 속, 삭아 가는 뼈가 높아서 외롭다. 그 덧없는 길이 지독한 주홍빛으로 세상에 가리워진들, 세상이 모르는 우리조차 아직 모르는 그런 가난이 어데 꼭꼭 감춰져 있지 않겠느냐.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기에 저 매화꽃 이름은 아무 무게도 없다. 나타샤가 나를 사랑하여, 눈발 거세지는 겨울밤 따스한 허공 시들어 가는 담장 하나라도 눈발에 닿으면 엉겁으로 화하여 떠나가는 것이니.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가 빈 집을 떠난다. 당나귀가 무엇이 좋은지 앙응앙응 운다. 


순결 하나로 봄이 오고 여름 가을 겨울이 오는 그곳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고 나타샤가 나를 사랑하여 오늘밤 하늘과 땅을 모두 덮는 눈이 내린다. 텅 빈 길이 모두 지워진다. 당나귀도 지워진다. 제 자취 지워가며 스스로를 소멸해 가며 피오르는 꽃이 너라는 것을, 톱에 걸려 있다 마침내 바다로 떠나가는 장항 바닷가 폐선처럼, 나도 나타샤도 당나귀도 가난한 걸음걸음 나는 듯 점차 가벼워져 나중에는 작은 콧노래마저 흥얼거리며 눈 위를 간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8-11-08 14:07:25 창작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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