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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패자(敗者)의 변(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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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작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45회 작성일 19-04-15 13:45

본문

웃음이 사라지고 적의만 번쩍인다

피 냄새를 쫓아 빙빙 돈다

두려우면 무릎을 꿇어!

망막에 번개가 치고 관자놀이에 천둥이 울리면

흐드러지게 붉은 꽃잎이 입가에 번지고

일그러진 장미는 짓밟힌 깡통처럼 바닥으로 무너진다

장미를 짓밟는 쾌감일까

링을 엄습하는 벌떼 같은 환호 속에

팽팽하던 적의는 먼 해변 파도처럼 가물거리는데

순간 슬픔에 앞서 다가서는 짙은 공복감은

허기로 채워야 할 내일이 일그러진 오늘

링 바닥 차가운 슬픔보다 두려운 탓일까

우리라는 말이 사라진 사각의 링에서는

옳든 그르든 진다는 용어에 관용은 없어

너 아니면 나, 승부를 가릴 단 하나의 손만 필요해

이유 같은 것은 이긴 뒤에나 물어봐

지금 저 링 아래 이글거리는 눈빛의 관객에게 던져줄

승자의 먹다 남은 빵부스러기 같은 야성 한 조각의 대가가

한 끼의 포만을 향한 치사한 본능일 수도 있지만

천사의 옷을 걸쳤든 짐승의 본성을 물었든

풀잎 낀 양의 이빨이든 늑대의 피 묻은 이빨이든 씹어야 해

씹기 위해 내일도 사각의 링을 돌아야 하지만

허물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드는 차가운 빗방울 하나

오싹한 느낌을 지우느라 눈을 감는 순간

요람처럼 편안히 흔들리는 고향 강언덕

꿈결처럼 환하게 흔들리는 복사꽃 그늘이

물러나지 않는 겨울 예감을 한사코 밀어내고 있었다

눈을 뜨는 대신 글러브를 벗기로 했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9-04-19 15:41:16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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