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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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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1회 작성일 19-11-0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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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향수



1

외로움이 일찍 잠자리로 몰아넣는 밤

커다란 느릅나무 가지가 길죽하게 휘어지자

하늘은 까악까악 소리를 내지른다

정원이 있는 집을 사서 

이이들을 위한 그네를 매달자던 옛날 옛적에가 

쉬지 않고 3D 프린트에서 흘러나와 A4지에 쌓인다

바닥에 떨어진 스커트에서 그녀가 걸어 나왔다

아이스 블루빛 안개를 허공 높이 내뿜어내면서 

갓난아기를 둘러싼 공기알 같이 딱딱하게 굳는다

냉장고 허밍이 부서지길 거부하는 울음을 덮고

창가에 기웃거리던 초승달이 구름에 가리면서 

쓰디쓴 탄내가 섞인 복도 저편에서 그녀는 화장을 지운다

오즈의 마법사, 에메랄드성은 투명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처리한 하루치의 데이터가 필터링 되면서

아찔한 향수를 칙칙 뿜어내며 코를 찡그린다 

응축된 냉기와 손끝에서 흩어지는 서늘한 그녀

기억이 전자기 영역의 무지개 거품을 터뜨린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마이닝이 그녀를 소환했을 뿐

거인은 이미 오래 전에 전자 램프에서 탈출했다


2 

연못가에 금붕어가 낙엽처럼 수면에 떠 있다

데이지와 민들레가 흩어졌지만 금작화는 여전하다

햇살이 창문에 흐르는 동안 위 아더 챔피어스가 깨어나고

그녀는 내 눈꺼풀 주름을 잡고 돌돌 말아 비뜬다

광대한 테이터 클라우드 우주에 

수십억 테라바이트 전자 필터기가 변조한 목소리가 들린다

미인을 얻으려면 노력해야지

0과 1의 디지털 숫자들이 천국의 표지판을 세운다

흠뻑 젖은 땀방울이 턱에 걸려 있다

날카롭게 울리는 브레이크 레버 소리 같이 끼리릭

여우님이셨군요

그 계절이 늘 그랬던 것처럼 생필품 위치를 파악하신다

우주 공간에 떠도는 이마에 쪽쪽 뺨에도

태양계 행성들의 온갖 이름을 줄줄 외듯이


3 

그리움은 벗어 던지기 힘든 습관

시간을 재는 배고픔이다

저 너머를 엿보는 아주 작은 열쇠구멍이다

은색 꼬리의 잔상이 들판을 가로지르더니

오솔길로 이어진다

내 가슴 속에 텅 빈 동굴을 찾아가는 듯 

하지만 길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고

갈래갈래 줄기를 뻗어갈 것이다


4 

칼에 찔린 척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시늉을 하듯

정박용 쇠기둥에 삐끄덕거리던  

게잡이 엔진이 썰물을 타고 나간다

어구에 초대 받지 않은 

아침 햇살 기둥이 일렁이며

잿빛 물길을 가르며 번쩍이는 창가

원래는 희색이었으나

이끼가 낀 푸른 집이 되어 있다

20년 전

문을 닫아 모든 걸 가두었었다

햇살이 떨어진다 11월 늦가을이 

내가 가져보지 못한 아내와 아이들 같이

우리는 우리가 아꼈던 걸 닮아갈 것이다

기울어진 시간이 차츰 벽을 타고 오르고 있다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것에 대한 슬픔 같이


택배 트럭에 상자 더미가 내리고 있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9-11-05 11:29:50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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