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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天命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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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37회 작성일 19-11-0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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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는까마귀 까악까악거리는 음향이 간혹 성스럽게 울리기도 하는 대모산 정상 억새밭에 찾아가그저 날카로운 잎새 위에 피만 뿌리고 돌아왔다는 天命을 바라본다.


선홍빛 사슴은 위태로운 비탈길만을 올랐다. 칡넝쿨에 발이 자꾸 걸렸다. 빨갛게 익은 잎들이 한쪽 귀로 들어왔다가 다른쪽 귀로 나가는 것이 간지러웠다. 마악 이가 돋아나는 바위가 낯 설었다. 반질반질한 거울 위로 청록빛이 흘러갔다. 天命과 내가 빈 방에 앉아 적막한 를 쓴다. 방 이쪽 구석에서 저쪽 구석까지 사슴 그림자가 끼륵끼륵 울었다. 사슴이 얼굴에 흰 천을 덮자 낡은 종이 위로 시를 지우는 대신 뜨거운 비가 낮은 옹이를 어쩌지 못하고 파란 나체들만 더 무성해졌다. 이끼 낀 거울을 함께 닦는다. 검은 나무 기둥이 점점 더 굵어졌다. 익사체 한 구가 天命과 나 사이에 와서 섰다. 석류꽃이 외롭다.  


적요한 소반 위에 미처 마치지 못한 시들이 정원을 이루고 있다.  


天命과 내가 빈 방에 앉아 서로에게 피를 각혈하고 있다. 대모산 정상에 억새밭이 그렇게 흐드러졌다지天命의 얼굴이 마악 세수를 마친 듯 해말갛다. 天命과 내가 서로의 안구 속에 손을 넣어 피 묻은 표현들을 끄집어낸다. 날이 선 언어들이 해체되는 사슴 울음소리를 낸다. 대모산 꼭대기에 그렇게 흐드러졌다던 갈대숲이 흰 갈대꽃 희미하게 서로 닮아가는 소리. 天命과 내가 대모산 정상 억새밭을 불어간다. 석류꽃을 질겅질겅 씹으며, 사슴이 빛나고 소용돌이 치는 것 안으로 숨는다. 선운사 청록빛 수림 사이 가리워진 길 돌무더기 사이로 톡 톡 형체를 뭉그러뜨리는 바윗결이 그리워진다는 듯이, 땅바닥을 때리는 차갑고 조용한 것이 창 밖에서 들려온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9-11-05 11:34:48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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