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종이컵 시집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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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494회 작성일 20-01-23 16:57본문
나도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예측할수도 없이
저 뜨겁고 씁쓸하게 내리붓는 침몰을
저토록 결연한 가부좌로 받아낼 수 있을까
읽던 시집을 둥글게 말아쥐고 창밖 화단의 남천나무
저 홀로 붉은 불꽃을 쬐는 햇빛의 얼어터진 살갗을 보며
뒷짐을 지고 섰노라면 만져지던 그 둘레, 그 온기를
그것은 표지의 두께다.
쉽게 찢어지고 구겨지는 내용들이 표피로 밀어낸 책의 굳은 살.
세밀한 행간까지 스며들 겨를이 없는 인생들이
밀착의 힘으로 서로를 세우고 있는 책장에
표지로 밀어부쳐 한 칸 설자리를 얻은 뒷모습들,
이제는 한물간 제목들을 풍기며
벽을 지키는 바리케이트가 되어가다 누군가 책 한 권을 뽑으면
그제사 비스듬하게 꽂혀져오는 빈틈에 등을 기대는 사람들
툭 동전 두세 알에 떨어지는 한 잔의 여백이 커피보다 진하다
표지의 두께 안으로 고이는 서너 모금의 숨, 쉼
표지를 열면 달달한 프림 커피가 하얀 김을 올리며
녹슨 거품을 삭이는,
나도 이백원짜리 종이컵 시집을 내고 싶다.
댓글목록
grail217님의 댓글
grail217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야..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요즘은 책 값이 물가 보다 싸지요..
시인으로 등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집을 출판하여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종이컵에 커피향이 시 처럼 달달하게 읽힙니다..
고맙습니다..
^^*..
싣딤나무님의 댓글의 댓글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고맙습니다. 종이컵 하나보다 못한 시집들이 수두룩 합니다.
이옥순님의 댓글
이옥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부터 종이컵도 그냥 못버리고
한번 더 살펴 보겠습니다
쉬운것 같지만 남다른 소재
잘 머물렀다 갑니다
싣딤나무님의 댓글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맙습니다. 시인도 뭣도 아니면서 시를 품고 산다는 것 진짜
바보짓이고 병신짓이고, 흔한 비유로 스스로 진주를 품는
머저리 조개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