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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뜨르의 하늘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라라리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246회 작성일 20-04-03 18:04

본문

정뜨르*의 하늘

 

 

 

1. 얼룩진 날들

 

 

느닷없이 광풍이 몰아칩니다

구렁 안으로 우리가 빨려 들어갑니다

칼날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우리를 벱니다

발목 잘린 꽃대들이 물살에 레드카드처럼 꽂힙니다

 

오름마다 샛노란 꽃망울 차오르던 날

파도가 태양을 가렸습니다

 

어둠의 눈빛이 내용증명도 없이 이방의 우리가 밟힌다며

피의 룰렛을 돌립니다

인문학 표지는 불살라지고 날짐승들이 울음 우는 곳에는

우리를 빼앗긴 순한 우리들이 숨어듭니다

 

모래에 묻혔던 페이지를 넘겨봅니다

목구멍에 걸린 우리가 조류를 따라 움직입니다

바람의 눈시울이 여전히 붉습니다

불어터진 총알이 날숨으로 체관을 떠돌다

울대가 막힙니다

 

핏물 밴 노을이 미녕 치마로 젖어들면

어린 각시가 되는 할망

아득한 허공 속 멍울을 어루만지며 포구를 헤맵니다

남겨진 자장가 깨우는 해풍 업고

바위에 들러붙은 미역처럼 물컹이는 상처를

바닷물로 헹구고 또 헹궈냅니다

 

 

2. 함께 날다

 

 

박음질한 심장이 서서히 간격을 벌립니다

너울 걷는 손길에 눈뜬 하얀 새가

파편을 하나씩 빼냅니다

 

우리를 잃고 나를 잊은 우리가

우리의 생살을 찢고 못을 박았던 우리가

묵언에 녹슨 재갈을 벗고

살아서 주검이던 족쇄를 곡진히 풀어주며

초점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환부에 날개가 돋습니다

문 뒤에서 합창이 들려옵니다

한 무늬로 자란 솜털이 방향을 알려주고

우리의 시야보다 높은 벽은 무너져 내립니다

우리를 사모하는 우리는

더듬이를 벗어도 입김 안에 둥지를 짓습니다

 

목숨 너머 건너간 우리가

타닥타닥 들불로 엉기다 돌무덤 위

붉은 동백으로 가없이 피었습니다

이제야 이승에서 가시 없는 손을 흔듭니다

 

총소리로 울던 앵무새가 익숙한 숨비소리로

아침을 열어줍니다

어멍 품이 간절한 너븐숭이*는

우리가 저자인 서책을 연이어 탈고 중입니다

 

산화한 핏자국으로 낮에도 별이 뜨는 바다가

오랜 흉터를 여위며 나란히, 

우리의 이름을 새로 쓰고 있습니다

 

 

* 제주국제공항. 4·3당시 대규모 양민 학살이 이뤄진 곳

* 제주 4.3 위령지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0-04-06 16:16:18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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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라라리베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라라리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중매력님 처음 뵙겠습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아픔을 나누고 새로운 화합을 향해 가는
시선을 담아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환한 봄날 되시기 바랍니다^^

최현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최현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반갑고 오랜만입니다.
마음을 담은 글 위에 엄숙해 집니다. 존경을 표합니다.
어수선한 시국에 내 몸 하나 잘 간수 하는것도 애국이지요.
무탈하시고 강건하시길 축원드립니다.
강 시인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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