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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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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작은미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82회 작성일 20-04-14 08:37

본문



오래된 푸석한 시멘트 벽에서 구석으로

고단한 흑백의 눈알을 굴리던 어느 여윈 여자가

울먹이며 매운 벽돌의 멱살을 잡고 있는 골목

무게를 깍아내지 못한 시간들을 밟아야 하는,

기대고 절뚝거려야 내려갈 수 있는 이 빠진 계단들의

가슴 누렇게 비추는 가로등과 수많은 인연의 줄기로

묶여 선 전봇대 위로 커다란 달이 구름 가지를

헤치고 하얀 숲으로 숨어들자 어둠과 이별이 무겁고

무서웠던 여윈 그 여자는 절뚝거리다 절뚝거리다

쓰러질듯 골목 끝 환한 전깃불 속으로

지우개도 없이 지워졌다.

머물수 없었던 이유를 물으며 왼손잡이가 살던 집

매운 벽돌의 멱살을 잡고 밤새도록 부르고 불렀던

말간 왼손잡이의 이름

그 왼손잡이의 이름이  동그랗게 찻잔을 돌며

시간을 맴돌다 서서히 녹아갔다.

시간의 무게가 내려놓은 단어는 유리창이

멀미 할 만큼, 손이 하얗게 되도록 닦아내고

닦아내야 했던 지움이고 잊음이었다.


어깨 아팠던 균열로 길 모퉁이 이가 부러질듯 한

약속 없던 바람에도 한참을 멈춰 서서 서로 다른곳을

보며 다른 눈빛과 시간으로 백지가 되던 모진 오후가

서서히 어둠에 묻혀 갈 때쯤 왼손잡이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났다.

애처롭고 작은,여윈 그 여자를 거리에 남겨 둔 채

왼손잡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두꺼운 밤 속으로

묻혀 들어갔다.

여윈 그 여자는 찢어진 백지 반쪽을 들고 한참을

오래토록 서 있었다.

버스가 끊어지고 오랜 사랑도 끊어진 시간

여윈 그 여자는 절뚝거리다 절뚝거리다 돌아섰던

왼쪽길을 수도없이 돌아보며 멈 짓거리다 지워졌다.


어느 매운 빨간 벽돌 속에서 환하게 웃는 왼손잡이

지우지 못했던 왼쪽의 기억처럼 왼쪽에 누웠다.

애처롭게 작고 여윈 그 여자는 지금쯤 어디서

왼손을 깨물고 살까

아마도 머리위로 작은 나비 한마리라도

왼쪽으로 날았겠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0-04-16 12:46:26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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