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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83회 작성일 20-07-2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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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의 무덤에 물어 물어 찾아가 본 적 있다

까마귀떼 앉았다가 날아올랐다가 

검은 대나무 잎들이  

스산한 파람 부는 곳이었다

나 태어날 적에 난산으로 어머니와 나 모두 죽을 뻔 했다 한다

태아였던 내 머리가 남들보다 두 배는 컸기 때문이라 한다.


흙 속에 누워 이 꽃뿌리를 매만지고 있겠지. 두더지의 배설물이 섞인 흙을 핥고 있겠지. 흙 알갱이 하나 하나 세계를 헤아리고 있겠지. 반쯤 썩은 하얀 치마 위에서 사과 한 알이랑 무화과 한 알이 꺄르륵 서로 쫓고 쫓니는 중이겠지


사과 한 알이랑 무화과 한 알. 

썩은 폐 한 쪽과 

찢겨져 나간 심장 사분지 일.


내 유년시절 우리집 길 건너 공터에 퇴역군인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월남에 가서 베트콩들을 무수히 때려잡았다는

하루 종일 아저씨는 넓은 터 한가득 꽃을 가꿨다

어느날이었다 

누군가 그 터에다가 죽은 개를 내다버렸다

눈구멍에 구더기들이 바글바륵 들끓고 있었다

날 원망스레 지켜보고 있었다 

이가 하나 하나 흔들리다가 빠졌다

그런데 그 해 꽃잎대들은 더 싱싱해지고 더 높아졌다

꽃숭어리들은 더 화사하고 

쏟아지는 원색으로 타들어갔다

그해 철조망을 꽉 붙들고 蘭順이는 

청록빛 풍선으로 부풀다가 

썩은 도라지꽃으로 터져 죽었다.


길 한 모롱이 돌 때마다 팔 하나 떼어주고 

다른 모롱이 돌 때마다 다리 하나 떼어주고

높은 데 매달린 대나무잎들이 

위태로이 떠는 것을 너도 듣고 있겠지


부드러운

팽팽하게 

허공의 균열들인

빈 의자 

바스락거리는,

 

먼 바다로 떠나갔던 익사체는  

더 멀어지는 법은 있어도 

돌아오는 법은 없다는 것을.

그러하기에 더 황홀한

널 찾아가는 길.

까마귀떼가 

검은 대나무숲 사이 날아가는 길.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0-07-26 12:46:58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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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봄빛가득한님의 댓글

profile_image 봄빛가득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난순이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시인님께서 이토록 찾아 주시니 참 행복해할 것 같습니다. 스산한 바람 부는 검은 대나무 숲길 한 모롱이에서 빈 의자만 바라보며 서성이다 갑니다. 평온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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