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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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565회 작성일 20-09-09 09:46본문
초록의 향기
날이 밝아 아픈 발을 숲에 디디자
간밤의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 사이로
휴지처럼 구겨진 이파리들이 뒹굴고 있다.
나는 지난 밤엔 일없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보았지.
너희들 쓰러져 갈 동안
너희들 찢겨져 갈 동안,
아편을 빨고 눈동자가 풀린 채 웃음 짓던 로버트 드니로도
쓰레기차에 뛰어들어 갈기갈기 찢겨나간
친구를 배신한 맥스도 아닌데,
너희들은 참회하듯 여기에 흩어지고 문드러져 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도록 추억을 끊지 못하는 주인공처럼
너는 어제까지도 가지와 주고 받던 진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너무 진해서 슬프고 또 비장한 너의 향기는
숲의 늑골까지를 꽉 쥐고 흔든다.
30년 전 볼 땐 보이지 않던 영화의 이면과 행간이
비바람 몰아치던 간밤의 영화에선
너무 잘 보여 나는 긴 밤을 뜬 눈으로 보내었다.
태풍이 오기전엔
너는 마냥 아름다운 잎이었고
꽃이었고 나무였고, 나의 건강을 담보하던
숲이었고 산책로였는데,
지금은 아편에 취한 로버트 드니로보다도
스스로 생을 던져버린 맥스보다도
슬픈 표정을 지으며
길과 언덕과 산등성이에 널려 있다.
물품 보관함에 속죄의 돈다발을 남긴다 한들,
친구여 나를 죽여 나의 배신을 응징하라 한들,
또 아편에 희미해진 뇌리로 지난날을 추억한다 한들,
또 스스로를 던져 쓰레기 더미로 사라진다 한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개미떼 같은 엔딩 크레딧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한들,
비록 공중에서 떨어지고 찢어져 널부러졌으나
지금도 내 앞에서
진한 생의 내음을 발산하는 너희들에겐 비할 순 없지.
그렇지
인생은 간혹 영화처럼 끝을 맺고
관객은 언제나 영화 같은 인생을 꿈꾼다지만
너희들은 그 마지막 남은 향기마저도
흙과 숲과 멀리 하늘과 또한 아픈 발을 가진
나에게까지 아낌없이 던져주며 가는구나.
그래서 나를 부끄럽게 하는 너희 숲 속에서 나는
아편 대신 태풍도 지우지 못한 너희 향기에 취하고
쓰레기차 대신 너희 초록빛 더미에 나를 던지고 싶다.
로버트 드니로의 단호했던 유대인 운전자,
엔딩 크레딧 구석진 어딘가에서조차
기억되지 않던 무명의 배우처럼.
그리고 오랜 세월 풍화된 필름을 뒤로하고 흐르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아스라한 음악처럼.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0-09-10 11:42:18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날이 밝아 아픈 발을 숲에 디디자
간밤의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 사이로
휴지처럼 구겨진 이파리들이 뒹굴고 있다.
나는 지난 밤엔 일없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보았지.
너희들 쓰러져 갈 동안
너희들 찢겨져 갈 동안,
아편을 빨고 눈동자가 풀린 채 웃음 짓던 로버트 드니로도
쓰레기차에 뛰어들어 갈기갈기 찢겨나간
친구를 배신한 맥스도 아닌데,
너희들은 참회하듯 여기에 흩어지고 문드러져 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도록 추억을 끊지 못하는 주인공처럼
너는 어제까지도 가지와 주고 받던 진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너무 진해서 슬프고 또 비장한 너의 향기는
숲의 늑골까지를 꽉 쥐고 흔든다.
30년 전 볼 땐 보이지 않던 영화의 이면과 행간이
비바람 몰아치던 간밤의 영화에선
너무 잘 보여 나는 긴 밤을 뜬 눈으로 보내었다.
태풍이 오기전엔
너는 마냥 아름다운 잎이었고
꽃이었고 나무였고, 나의 건강을 담보하던
숲이었고 산책로였는데,
지금은 아편에 취한 로버트 드니로보다도
스스로 생을 던져버린 맥스보다도
슬픈 표정을 지으며
길과 언덕과 산등성이에 널려 있다.
물품 보관함에 속죄의 돈다발을 남긴다 한들,
친구여 나를 죽여 나의 배신을 응징하라 한들,
또 아편에 희미해진 뇌리로 지난날을 추억한다 한들,
또 스스로를 던져 쓰레기 더미로 사라진다 한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개미떼 같은 엔딩 크레딧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한들,
비록 공중에서 떨어지고 찢어져 널부러졌으나
지금도 내 앞에서
진한 생의 내음을 발산하는 너희들에겐 비할 순 없지.
그렇지
인생은 간혹 영화처럼 끝을 맺고
관객은 언제나 영화 같은 인생을 꿈꾼다지만
너희들은 그 마지막 남은 향기마저도
흙과 숲과 멀리 하늘과 또한 아픈 발을 가진
나에게까지 아낌없이 던져주며 가는구나.
그래서 나를 부끄럽게 하는 너희 숲 속에서 나는
아편 대신 태풍도 지우지 못한 너희 향기에 취하고
쓰레기차 대신 너희 초록빛 더미에 나를 던지고 싶다.
로버트 드니로의 단호했던 유대인 운전자,
엔딩 크레딧 구석진 어딘가에서조차
기억되지 않던 무명의 배우처럼.
그리고 오랜 세월 풍화된 필름을 뒤로하고 흐르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아스라한 음악처럼.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0-09-10 11:42:18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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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시화분님의 댓글
시화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는 보통 긴 시를 끝까지 읽은 경우가 거의 없는데,
긴장이 계속 유지되면서 한 행 한 행 따라가게 되는 군요.
담백하게 진술된 서술의 내용
한 편의 영화와 쓰러진 나무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이불되어
따뜻함으로 느껴지는 시였습니다
한 수 배우게 된 시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너덜길님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공감할 수 있다면
그 시는 이미 행복에 빠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읽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시,
아, 어렵지만 계속 써보고 싶습니다.
우리 시마을엔 그런 분들이 많이 있으니,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