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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신스 목걸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1건 조회 486회 작성일 20-09-10 00:00

본문


히야신스 목걸이



나는 이국의 정원에서 자주 길을 잃는 버릇이 있다. 

빛바랜 창살에 목이 꺾여진 등나무 넝쿨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히야신스꽃들이 기울어진 물가로 빠꼼히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심연이었다. 볼에 닿는 거울의 자궁벽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때 내 입가에 닿던 것은

내 유년시절 어머니께서 수탉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실 때 

들리곤 하던 그 꽤액하는 소리.

나는 창살에 에워싸인 상자같은 것 바깥에서

혼자 암탉이나 된 듯 울었다.

 

히야신스꽃은 내가 몇년 전 통영 부두 거리에서 지나쳤던 비린 꽃이다. 누군가에게 목청 높여 "뭐락카노"하고 있었다. 비늘 돋은 손등에 밤꽃냄새 나는 것이 묻었다. 두터운 황금 지붕을 인 거북이가 양귀비꽃을 씹었다.  

 

홍시처럼 빨갛게 물든 소녀가 청록빛 나뭇잎들을 헤치고 나왔다.

 

새하얀 등대에 못박힌 바다 그늘, 거대한 것이 기울어지는 그 투명한 감각.

 

나는 그녀 이름을 잊었지만,

홍시의 그 맛과 향기를 내 등뼈 따라 끌어올렸다. 

 

뼈 드러난 홍시가 소녀를 밀어 와인글라스 안으로 빠뜨렸다. 연분홍빛 석양에 

부글부글 끓으며 소녀의 이름이 발효되어 갔다.

 

소녀가 형상을 잃어갔다. 

 

히야신스는 도취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소녀가 오지 않고 히야신스가 내게 왔다. 

히야신스꽃은 가볍지만 그것의 하얀 빛깔은 무겁다.

소녀는 넝쿨장미가 은빛 막대기둥을 감아올라가는 

청록빛 공간 속으로 문 열고 들어가버렸다.

 

그녀의 혈관이 썩어 향그럽게 개화하는 소리. 삽살개 한 마리가 여름을 뛰어올라갔다.

 

오르막길이 조심스럽게 떨렸다. 마치 내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던 

대장암의 그 단 내음처럼.

 

흩어지는 파란 안개 속에서 많은 눈동자들이 굴러가는 소리.

 

히야신스꽃들은 아직 황홀한데 

소녀의 그 청록빛 머리통은 맑은 물살 속으로 완전히 

잠겨버리고 말았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0-09-16 11:41:28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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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사합니다. 랠리라기에는
어째 비틀비틀하는 것 같네요.
하지만 응원해주신다니 힘을 내서 한번
부딪쳐보겠습니다.

날건달님의 댓글

profile_image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님의 시를 감상할 때마다 저는 시인님이 의도한 바를 찾기보다 그냥 저만의 이미지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즐기고 있습니다. 시인님의 히아신스는 흰색, 나의 히아신스는 분홍색입니다. 시를 해석하기보다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이 나를 즐겁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날건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미지를 그려가다 보면 언제나 어느 지점에서 끊기곤 했는데 그런 이유였군요.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떤 분이 시를 설명하는 순간 시를 고착화시키는 것이라서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제가 그만 그짓을 해버렸군요. 비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날건달님의 댓글

profile_image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콘트라베이스의 낮은음 사이로 들려오는 귀뚜리 울음소리, 지난겨울 찬 서리 맞으며 견디어낸 그리움으로 담근 감 과일주 한잔을 떠올리며 이 시를 읽고 또 읽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감와인 주문을 부탁했는데 며칠이면 그 향기를 누릴 수 있겠지요. 평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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