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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과 노천명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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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89회 작성일 20-10-20 01:20

본문

난설헌과 노천명과 나 



1. 

밤이다. 어둠을 뻗어나간 포도나무 덩굴이 늘 

뒤척이는 소리. 빛나는 포도알들은 황홀한 폐렴에 걸려 있다. 바다여. 날 선 바위들을 안았는가? 너는 죽어가고 있는가? 이미 조장은 

네 발끝에 휩쓸려온 모래알들을 비석으로, 장미 향기 도는 향나무로 일으켜세우고 있는가? 언덕이다. 바람이 네 얼굴을 닦아준다. 

닦이고 닦인 투명한 것 속에는 청록빛 밤이 깊숙이 가라앉아 있다. 내가 책장을 덮자 먼저 밤이 흰 책장으로부터 배어나온다. 

밤하늘에는 누군가 휘갈겨쓴 별들이 드문드문 돋아있다. 통각 위에 지문을 찍는다. 너는 사랑을 몰라. 그래서 그렇게 네 휘파람 소리는 은빛이지. 

네가 몸을 던진 동백꽃 중심으로 바람이 고여든다. 죽음이 가까이 들려오는 밤이다.


2.

난설헌과 노천명과 내가 하나의 표현 안으로 모여든다. 칙백나무 껍질이 달라붙어 있는 거울을 들고

석류꽃이 다가온다. 방문을 닫고 촛불을 켰다. 난설헌은 겨울이고 노천명은 오월이다. 석류꽃은 호수 위에 앉아 탯줄을 깊이 깊이 

수면 안으로 가라앉힌다. 난설헌이 매화꽃 한 가지 꺾어 가슴을 두드린다. 은어의 아가미 안에서 청록빛 이끼가 얼어붙어 

거울의 균열이 신경 속까지 침입하였다. 열어젖혀지지 않는 겨울이여. 나의 고향같은, 높은 담장이여. 투명한 입김을 

겨울의 시어로 번역할 수 없구나. 예리한 파도가 사슴을 덮친다. 노천명과 난설헌이 겹쳐진다. 나는 내 얼굴을 바라본다. 

촛불이 난설헌과 노천명과 내게 속삭인다.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표현을 찾으라고. 닫혀지지 않은 문을 열고 

난설헌은 겨울로 돌아가고 노천명은 사슴의 숲으로 돌아가고 나는 섬진강 하구 갈잎들 사이에 숨었다. 만져지는 갈잎마다

뜨거운 피가 묻어있다. 

석류꽃은 충주호 수몰된 마을에 빈 집 한채로 앉아 물거품들 각혈하는 소리를 작곡하고 있다한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0-10-27 13:52:49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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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창가에핀석류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래전 충주호에서 밤낚시를 하면 참 다양한 어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잉어, 붕어, 향어, 끄리, 쏘가리, 어쩌다 비단잉어도 만날 수 있었는데
마치 코렐리 시인님의 살아 움직이는 다양하고 풍부한 시어들처럼요,
부서지는 달빛이 펼쳐내는 수면의 적막 위로 캐미라이트 불빛 반짝이는
찌톱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조사들의 집중과 여유로운 모습은
동적인 바다 낚시와는 또 다른 서정인지라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시인의 길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좋은 글 즐감하며 흔들리는 귀향의 고속도로가
포근 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참, 제천시 청풍면 읍하리는 저의 누님이 살던 수몰 된 옛 마을이랍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그 수몰된 마을이 석류꽃님이 돌아갈 수 없는 노스탤지어의 상징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뜻이 있었군요.
밤낚시에 대해 묘사하신 말씀이 꼭 아름다운 한편의 시 같습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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