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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567회 작성일 20-10-26 07:12본문
그때 나는 사각형의 어둠 속에 있었다. 나는 나무계단을 딛고 여기 올라왔으나, 이제 나무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벽난로에 불이 꺼졌다. 나를 향해 장작을 던지는 이가 있었다. 그는 창문에 코를 박고 천공으로부터 날 들여다보고 있었다.
숲이었다. 숲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냈다. 창문도 흔들렸다. 창문 이쪽 어둠도 흔들렸다. 나무계단을 딛고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달이 숲 위에 멎어있었다. 창백한 달빛은 점점 더 가늘어져서 숲 사이 길이 실핏줄처럼 밤바다에 드러나있었다. 새하얀 날개같은 것이 숲 안쪽으로부터 넓게 펼쳐지는 소리 들려왔다. 금송과 칙백나무 수국이 울었다.
내 고독은 북향이었다. 까만 나무들에 고독이 가로막혔다. 나는 이 어둠도 저 반달도 모두 내 유년시절로부터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잠드는 대신, 저 어둠의 지형도와 빛의 휘청이는 이랑을 탐험해야겠다. 깨진 유리조각들을 맨발로 밟고 있는 저 아이. 어둠 안으로 흘러드는 빛의 세포들.
내 안에서 깨어나는 어떤 운율의 황홀한 바다. 내 누이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고백을 읽는 대신, 저 바다로 걸어들어가 익사했다.
빈 페이지 안에 숨소리가 태어나고 있었다. 반달이 윤기 도는 까만 머리카락을 길게 길게 지상에 흘렸다. 그렇다. 아침은 아직 멀다. 저렇게 높은 창문도 지금 익사하고 있으니까.
댓글목록
날건달님의 댓글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간밤에 어둠 속을 둥둥 떠다니는 익사체의 손목을 잘라 운율의 바다속으로 던져버렸지, 그 순간 내 심장을 뚫고 돋아난 선홍빛 꽃 무리, 방안엔 붉은 꽃잎만 가득하네요. 잘 감상하고 갑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날건달님 댓글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tang님의 댓글
t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직관적인 대사가 황홀함으로의 길을 엽니다
순백의 호흡이 거침과 같이함을 놓치며
미맹의 힘으로 난맥상의 위상을 여기시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바는 두고두고 새기며 시를 쓸 때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