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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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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668회 작성일 20-11-05 14:06

본문



가을달 



하얀 종이 위에 윤곽을 그린다. 가을밤은 청록빛이다.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지층이 있다. 새하얀 학 한마리가 가장 깊은 지층으로 날아가 버린다. 종이가 접히고 가을밤은 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가을달은 내 숨소리 안으로 들어온다. 가을달, 가을달 하고 가만히 불러보면 내 누이는 꼭 죽어버린 것만 같다.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야 할 것만 같다. 오늘밤 명성산 금송 가지에 기대 휘청 휘청 높은 하늘로 오르는 칡넝쿨이 황홀히 감고 있는 그것, 내 누이의 잔해인 것만 같다.   


사방이 갑자기 적요하다. 가을달, 가을달 하고 가만히 불러보면 내 유년시절로부터 오는 그 무엇인가에 목이 메인다. 눈시울 뜨거운 것이 문지방을 넘어가면, 금붕어들이 깊고 푸른 가을밤 속을 헤엄쳐다닌다. 붉은 파문, 황금빛 파문, 깊이 가라앉는 파문, 위로 솟아오르는 파문, 가을달이 하얀 종이 위에 맺힌다. 닥나무 껍질이 둥둥 떠가는 종이결도 파문을 닮았다. 내 고막 위에 무엇이 쓰여지고 있는지, 가슴을 부여잡고 각혈하는 가을달이 한 잎 한 잎 흩어져, 서리 깔린 검은 땅 위에 몸을 눕힌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0-11-10 11:09:25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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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제 시에 볼거리가 많은 것이 아니라
시인님께서 없는 것을 보아주시는 거겠죠.
열심히 하라는 말씀 감사합니다.

날건달님의 댓글

profile_image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슴속에 달린 심장의 고동과 세동의 파장, 한순간 날개도 없는데 하늘로 솟았다 꺼졌다, 과연 신은 어떤 심정으로 날 빚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 생각에 잠기는 제가 엉뚱하기도 하고, 한 줌 가을 달빛을 이렇게 그려내시는 시인님도 궁금도 하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제가 여기 시마을에 오는 이유는 시인님의 시를 보기 위해서죠. 늘 한결같은 당신의 시가 저의 심장을 떨게 합니다. 세상 어딜 가더라도 이곳에서만 당신의 시를 볼 수 있으니까요. 당신이 여기 시마을에 계셔서 참 좋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제 시의 애독자이시군요. 제 시에 애독자가 생길 수 있다니 놀랍네요. 감사합니다.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시를 쓰셔야 하는 분이시고, 아주 잘 쓰실 수 있는 분 같습니다.
제 시가 독자의 수준을 따라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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