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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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젯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450회 작성일 20-12-23 21:48본문
술만 취하면 적금을 깨서 여행을 가자던 아내는
잠이 깨고 꿈을 깨고, 술을 깨어도 적금을 깨지 못했다
술만 취하면 밀려드는 파도와 산너울들을 다 부어버린
아내의 적금 통장에는 모든 종착역들이 다 들어 있어
적금을 탄 기념이라며 술에 취한 아내는
여행을 다 끝낸 사람처럼 맥이 풀려 잠이 들었다.
만기가 되면 여행을 가자며 삼십 만원 짜리 적금을 새로 들고
술에 취해 통장을 펼쳐 보이던 아내는
만기가 되어 낡은 씽크대를 바꾸고
수도 꼭지를 비틀어 철철 흐르는 바다에 간밤의 술잔을 씻었다
술만 취하면 적금을 깨서 여행을 갈거라며
꼭 쥐고 잠든 아내의 적금 통장을 펼치면
쉼 없이 바다를 접었다 펼쳤다 하며 바다를 건너는
바닷새들의 탁하고 쇠된 울음 소리가 들린다.
술만 취하면 여행을 갈거라는 아내의
적금 통장을 펼치면 백두대간 첩첩이
글썽글썽 에워싼 붉은 눈시울이 보인다.
기어히 적금을 깨고 술에 취한 아내는
무너진 산자락으로 메운 바닥에 주저 앉아
이 지긋지긋한 무전 여행은 언제 끝나는거냐며
두 뺨으로 범람하는 바다를 손바닥으로 막았다.
댓글목록
너덜길님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뭐라 적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글을 남깁니다.
참, 가슴으로 흘러들어오는 시입니다.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젯소님의 댓글
젯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드디어 적금을 깬 아내는 어디로 여행도 가지 않고 방콕 입니다.
전기 장판이 하와이 해변의 모래 같은지 종일 등짝만 지져 대네요. ㅋㅋㅋ
부족한 시를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작은미늘barb님의 댓글
작은미늘barb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절절함에 아내분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이 느껴집니다.
저도 몇달 고생했는데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부인께 힘내시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좋은시 감사합니다.
젯소님의 댓글
젯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사합니다. 엄마가 된 여성들의 힘은 근원은 자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암담한 예측들과 걱정들이 새해를 가로 막고 있습니다.
모두 강인하게 이겨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