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262회 작성일 22-05-20 01:06본문
뱀
산길을 걷다가 바람에
휘몰아치는 산갈대 속을 걷다가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마음을 잃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에메랄드빛 매끄러운 허공을 걷고 있었다.
수면은 투명했으며 배는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내 오후는 곧지 못하고 흙길은 서서히 비탈길로 이어져
저 멀리 산 아래 시인들이 살아가는 작은 집들
엎드려 후박나무와 늘어진 등나무 넝쿨 플라타너스 아래 숨어 있었다.
그때였다.
아주 작은 뱀 하나가
검은 물감과 흰 물감이 조화롭게 섞이지 못한
불협화음을 달구어진 등 위에 얹고서
날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뱀은 날 노려보고 있었다. 흙 위에 나뒹구는
이슬방울처럼 내 폐는 금새
찢어질 듯 아파왔다. 거울처럼 차가운 수면 아래로
누가 손을 넣었다가 물을 탁 하고 튀기는 것이었다.
파문.
뱀 한 마리가
고원지대 외로운 산길을 기어
죽음 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뱀은 저 푸른 하늘이 어리는
자신의 표정 속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내 곁에서
혈관이 끊긴 손목을 자연스레 흔들며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동공에 박힌 부용꽃이 시들어 가는
스물네살. 후박나무
청록빛 수액이
그의 혈관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으리라.
뱀은 반투명한 껍질 하나만 남기고
내 유년 속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다시
산길 위에 혼자 남았다. 샛노란
산유화 한 송이가 파랗게 질려
샐러맨더의 비늘이 묻어 있을 뿐이었다.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부용꽃 스물네 송이 붉게 떨어지는 그 투명하고 시린 살라맨더의 비늘 속으로 홀연히 걷다 갑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grail200님의 댓글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청록빛 수엑이 ㅡ> 청록빛 수액이
너무나 아름다운 시입니다
닮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수정하였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