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를 견디는 법/ 오명선(시감상) > 청소년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청소년시

  • HOME
  • 창작의 향기
  • 청소년시

(운영자 : 정민기)

☞ 舊. 청소년시   ♨ 맞춤법검사기

 

청소년 문우들의 전용공간이며, 1일 2편 이내에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시스템 오류에 대비해 게시물은 따로 보관해두시기 바랍니다

  타인에 대한 비방,욕설, 시가 아닌 개인의 의견, 특정종교에 편향된 글은 삼가바랍니다  

오후를 견디는 법/ 오명선(시감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水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31회 작성일 15-07-11 18:17

본문

오후를 견디는 법/ 오명선

 

몇 겹으로 접혀
낡은 소파에 누웠다

며칠 현관문이 '외출 중'을 붙잡고 서있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방전되었다

익숙한 풍경이 커튼처럼 걸리고
빛이 차단된 몸에서
수많은 눈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화창한 오후는 그림자를 둘둘 담요처럼 감는다

뱉지 못한 문장 뒤틀린 서술들
나는 오래전 어둠에 길들여진 어긋난 문법,
나를 필사하는 오후의 손가락이 한 뼘 길어졌다
흐린 지문으로 나를 한 술 떠먹는다

적막의 두께로
낡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가끔 손을 넣어 가라앉은 나를 휘저어 본다


-계간『詩로 여는 세상』(2011, 여름호)

...............................................................................

 

어느 한군데 문학적이지 않은 언술이 없고 시적 장치가 피해 간 곳이 없다. 그리 길지 않은 시임에도 읽는 내내 행간의 늑골을 긴장시켜야만 했다. 시인과 함께 ‘오후를 견디’면서 ‘몸을 몇 겹으로 접어’ ‘낡은 소파에’ 누이기도 하고, ‘수많은 눈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 ‘화창한 오후’ ‘그림자를 둘둘 담요처럼 감’기도 했다.



무슨 연유로 며칠씩이나 현관문에 '외출 중‘임을 내걸고 ’나‘를 ‘세상에서 방전’시켰던 걸까. 도대체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무얼 궁리했단 말인가. 이럴 땐 삼시 새끼 챙겨 먹는 것도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다. 참견할 그 누구도 둘레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좀이 좀 쑤실 법도 한데 스스로를 무엇인가에 몰입시킴으로써 '적막의 두께'를 쌓는다.



그림자를 포개고 앉은 듯한 불안, 더디게 흐르는 시간의 모서리에 던져진 적요. ‘뱉지 못한 문장 뒤틀린 서술들’의 석연치 않은 그 무엇, 혼자 보내는 어둠의 시간을 잘 훈련한 사람일수록 문학을 성공시킬 가능성도 그만큼 크겠지만 가혹한 일이다. ‘오래전 어둠에 길들여진 어긋난 문법’이 오래 입은 옷처럼 익숙해져 시차의 적응이 난항이다.

 

오후를 견디는 것은 낯선 적요를 견딘다는 의미일 터. 머리맡에는 세상으로 쏟아져 나오지 못한 시간들이 수북 쌓여간다. 고장 난 시간의 부스러기들이 블록처럼 쌓이는 동안 ‘오후의 손가락이 한 뼘 길어졌다.’ 허무의 자잘한 시간 위에 의미망이 덧씌워지면서 구원에 나선 ‘마니또’의 시간도 잠시 멈추어 침묵했다. 힘을 가진 시가 그러하듯 오후를 잘 견뎌야 삶이 단단해지리라.

 

‘적막의 두께로 낡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시간이 자신을 배반하고, 인내가 현실을 외면해도 시인은 꿈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꿈이 적막의 무게로 침전된다 해도 ‘가끔 손을 넣어 가라앉은 나를 휘저어’보는 것으로 나를 조금 부양시킬 뿐.





권순진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610건 51 페이지
청소년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110 야생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52 0 12-02
109
공허 댓글+ 2
동산고음유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7 0 12-01
108 포이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33 0 11-30
107 신수심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64 0 11-29
106 전민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0 0 11-29
105 보이지않는바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2 0 11-28
104 동산고음유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8 0 11-27
103 일여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9 0 11-27
102
2015.10 심사평 댓글+ 4
숲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58 0 11-25
101 동산고음유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7 0 11-25
100 운영위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1 0 11-24
99 운영위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90 0 11-24
98 강정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8 0 11-24
97 동산고음유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0 0 11-23
96
구름 과자 댓글+ 2
동산고음유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2 0 11-23
95 구다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1 0 11-22
94
빼빼로 댓글+ 2
동산고음유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1 0 11-22
93 동산고음유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73 0 11-21
92 동산고음유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90 0 11-20
91 동산고음유시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9 0 11-19
90
거울 댓글+ 1
인소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2 0 11-18
89 가을달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0 0 11-14
88
자유란 댓글+ 1
전민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8 0 11-13
87 christi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54 0 11-12
86
나는 한다 댓글+ 1
새크리파이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53 0 11-12
85
짝사랑 댓글+ 1
프로메테우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3 0 11-10
84
기차 댓글+ 2
돋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5 0 11-09
83 행복한금붕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1 0 11-08
82 운영위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5 0 11-06
81
겨울새 댓글+ 4
전민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4 0 10-28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