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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0일 새벽의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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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56회 작성일 15-07-10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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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덕구라는 복싱 선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았다. 한 두어달, 월화를 쉬고 수목금토일을 나가던 식당을 문자 한 통으로 집어 치우고, 이틀도 더 쉬지 못하고 쫓기는 기분이 되어 벼룩시장과 교차로를 뒤적이다, 역시 정직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가사원에 전화를 해서 오후반일을 얻었다. 내가 종일반을 가건, 오후반, 오전반을 가건, 저멀리 출퇴근에 삼십분이 넘게 걸리는 문산이나 단성, 원지로 가건 어디를 가도 데릴러 오는 수영씨가 막걸리와 소주를 한 병씩 사고 오후 서너시에 점심겸 저녁을 먹고 배가 고픈 나를 위해 고추전도 굽고, 라면도 끓여서 술상을 봐왔다. 사실 그와 함께 있으면 시를 쓰야할 까닭이 없다. 늘 내게 시를 쓰게 하는 감정은 충족이나 안정감이 아니라 격렬한 결핍과 불안이였던 것 같다. 그는 씻기 싫어하는 나의 머리를 감겨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발가락 사이에 목욕 타월을 넣어서 발을 씻겨준다. 그와 내가 함께 살기 시작한 집은 시골도 도시도 아닌 동네의 산밑에 지은 스레이트 집이다. 천정에는 고양이 일가족이 사는지 목욕을 하거나 잠을 자려고 누우면 그들의 토닥거리는 삶의 소음들이 들려온다. 집 주인 아저씨가 놓자고 한 쥐약을 놓지 못하게 한 일은 정말 잘한 일 같다.  회초밥 집 일을 마치고 온 터라 비닐 봉지에 고양이들의 밥을 잔뜩 담아와서 장독대에 놓인 그릇에 담아 주었더니 샤워를 끝내기도 전에 다 먹어 치웠다. 나는 어쩐 까닭인지 지구에 사는 모든 동물에게 인간인 사실을 미안하게 여긴다.  그들이 집과 동굴과 식량과 새끼들과 오늘과 내일을 빼앗긴 것은 모두 사람 때문이라는 자책감이 든다. 동물을 식량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고기가 된 동물은 늘 내 식욕을 돋구기만 한다. 동물을 먹지 않겠다는 결심은 늘 동물을 먹고 배가 부를 때 하게 되는데 뱃속에서 이전에 먹은 동물이 다 사라지면 그 공복만큼 동물에 대한 식욕도 늘어나서 나의 식탐에 나는 절망한다. 어쨌거나 수영씨는 내가 동물을 먹거나 식물을 먹거나 자상하게 내 허기를 몰아내는 일을 도운다. 요즘 비도 자주 와서 일도 많이 쉬고, 고철값도 떨어질대로 떨어졌지만 내가 그를 사랑하는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 요즘 법정 스님 덕분에 불교에 심취한 그는 그렇챦아도 소유와 별 인연도 없는 사람이 점점 더 무엇을 소유하기 위한 노력과 멀어지고 있는듯하다. 나는 그러면 그러는데로 내버려둔다. 그가 나랑 함께 살기로 한 건 그렇지 않은 상황보다 행복할거라고 생각해서이지 이전보다 뼈빠지게 일하고 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바둥거리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아무도 살려고 들지 않는 천만원짜리 달세도 없는 시골집이지만 주방에 한지를 바르고 마당에 뒹굴던 나무 토막으로 선반을 몇개 달고 이래저래 꾸미니 제법 신혼집 테가 난다. 나는 십분이라도 이 집에서 더 빈둥거리고 싶어서 출근이 더더욱 하기 싫어진 것 같다. 마당에는 노트북을 가져다 놓고 시를 쓸거라고 공사판에서 짐을 옮길때 깔았을법한 목재 파렛트를 톱으로 자르고 못으로 잇대어서 책상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먹을 반찬을 갖다주러 이곳에 올 때마다 사람들이 흉본다면서 나의 핸드메이드 책상을 치우라고 야단이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한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무리 말씀하셔도 저는 어머니 말씀을 따르지 않겠다는 나만의 거부 방식이다. 처음엔 수영씨도 그런 더러운 나무토막으로 만든 것을 어디에 쓰려고 그러냐고 펄쩍 뛰었지만 지금은 그기에 앉아서 전자 담배도 피우고 커피도 마신다. 나는 늘 행복이라는 단어가 공허한 것이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것은 텔레비젼이나 영화, 광고 같은데서 뭔가 행복과 거리가 먼 목적을 가지고 그럴싸하게 꾸며낸 것이라 믿었다. 굳이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달짝지근한 기분이 시를 쓰는데 해롭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텔레비젼이나 광고에 나오는 기성복 같은 행복이 아니라 정말 내 몸에 꼭 맞는 편안하고 겉치례 없고 내게 딱 어울리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허영끼 없는 행복 같은 감정에 자주 젖는다. 이전엔 시를 쓰지 않으면 내가 더 이상 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왜 그런걸 쓰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새로운 시를 쓰는 일보다 빙수를 가는 기계 없이 팥빙수를 만들어 단 음식을 좋아하는 수영씨를 깜짝 놀라게 해주는 일이 더 절실하게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우유를 얼려서 감자 깍는 칼로 긁어 내고 그기다 단팥과 빙수용 떡을 넣으면 된다. 그기다 미싯가루를 넣으면 금상첨화 겠지만 쓰지 않고 노예처럼 일하지 말자는 생각이 나와 비슷한 수영씨가 불필요한 지출을 한다고 펄쩍 뛸 것 같아 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의 행복을 방해하는 기계들을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텔레비젼, 스마트 폰 같은 정보 매체가 자꾸만 행복을 기성화 시킨다.  이 영애가 광고하는 냉장고를 쓰야 할 것 같고, 김 연아가 광고하는 에어콘을 달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중고품 가게에서 칠이 다 벗겨진 냉장고를 사도 일부러 산 빈티지 가구처럼 멋이 있고 음식을 냉장 냉동 시키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선풍기만 두어대 있어도 여름은 금방 날려 간다. 일주일마다 멀리 있는 명산을 찾아 값비싼 아웃도어를 입고 사진을 찍어 올리지 않아도, 동네 뒷산만 갔다와도 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그것은 그들의 것이고 그들의 행복이다.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다. 남의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과 빈곤감에 젖는 것은 탐욕이다.  내 남자는 장동건이나 현빈이 아니라 수영이다. 그는 키도 작고 배움도 짧고 직업도 변변치 않고 가진 것도 없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늘 그가 아깝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늘 내가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때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성질을 버럭버럭 내고 소심하고 낯가림이 병적으로 심하고 입이 심하게 짧지만 그것은 그의 특징이고 그와 다른 사람을 구분짓는 매력인 것 같기도 하다. 일기가 길어졌다. 김 덕구를 보고 그 시절 우리네 삶이 너무나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영화에서 미화 시키는 것처럼 소년은 태양과 바다를 보고 자라서 복서의 꿈을 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먹고 살기 위해서 맞고 때리고, 밑바닥에서 솟구쳐오를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것 뿐이였던 것 같다. 임신 중인 약혼녀를 조국에 두고 먼 미국땅에서 개맞듯이 맞아 죽었다. 그 장면을 시청했을 그 어머니와 여자를 생각하니 사는 일이 왜이리 참담한가 싶어 이가 갈렸다.

다섯시다. 조금이라도 자야한다. 내일 출근하려면 한숨이라도 붙여야한다. 내일은 산채가라는 생선구이집이 아홉시 반에서 두시 반까지 이고,  솥두껑 삼겹살 구이집이 다섯시에서 열시 까지다.  일부러 이렇게 조각일을 하는 것은 식당일이 지긋지긋해서이다. 그래도 메뉴가 바뀌면 덜 지겹기 때문이다. 영혼이 풍부하면 풍부할 수록 적응하기 힘든 노동이다. 일당 몇 푼 벌자고 나 자신을 황무지로 만들지 않으려면 단도리를 잘해야한다. 사람을 경계하고 생각을 단속해야한다. 어머니가 아무리 내가 만든 책상을 타박해도 어머니가 국수집을 하며 사용하던 네모 탁자를 마당에 펼치지 않는것처럼 나는 내가 톱질하고 망치질하고 내가 꿈꾸는 하루를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절의 중들은 자신을 찾기 위해 부모도 처자도 버린다. 나 자신일지라도 버릴 각오를 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죽음은 누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린 살아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한다. 하루 하루가 지상의 최후다. 죽음을 염두에 두면 어쩐일인지 모든 것이 생기발랄해진다. 어떤 비루와 초라함도 반짝이고 싱싱하게 살아 오른다. 시간이, 살아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죽음을 앞두면 달콤해진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의 관점에서 늘 깨어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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