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지 않기 때문에 시기하고 치사해지는 것 같다. 시를 멀리하는 것은 속에 매몰되는 것을의미한다. 사는데 중이 어디있고 속이 어디있을까마는 시기하고 치사해지는 것은 더럽게 젖고 구겨진 종이처럼 기분 나쁘게 불타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쁠것도 없지만 어쩐지 불쾌하고 찐득하고 후덥지근한 묶임과 매임 속에서 허덕이는 것이다. 시를 쓰려면 눈을 갈아 끼워야 한다. 갈아 끼운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시로 창조 되어 있다. 그 눈을 버리면 장님이 되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어 속도 속도 그런 더러운 곳이 없게 된다. 나는 식당 아줌마가 아니다. 식당에 다니는 시인이다. 내가 가지려는 것은 그녀들과 달라야 마땅하다. 화가 나고 분이 나는 것은 가지고 싶은 것이 같기 때문이다. 인정 받고 싶은 것인가? 유능한 식당 아줌마로....그렇게 성공이라도 하고 싶다는 건가? 어차피 시야 성공이 없는 것이니 식당 아줌마로라도 성공을 하고 성취감이라는 보상을 받고 싶냐고 내게 묻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지경이 된 것은 꽤나 멀어져 있다는 증거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어 목구멍이 막혀버릴까봐 식당을 다니는데 식당을 다니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어버리다니....제대로 되었다 싶은 시 한 줄 쓰보지 못한 것이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간다. 그냥 이대로 시와 남남이 되어가는 것인가? 이럴려고 서른 두살 그 폭풍치는 봄날부터 술 마시고 세상의 의붓자식처럼 떠돌며 시가 잠시 정분을 나누어준 모지랭이 첩상이처럼 돌아보아주는 이 없는 정절을 지키며 살아 왔던걸까? 미친년이 따로 없다. 팀장? 능력? 인정? 유능한 식당 아줌마? 어이구 그냥 죽어라 이년아! 이 업을 경멸해서가 아니라 방편에 혹해서 목적지를 잃어버린 병신년이 미운 것이다. 우리 인생도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린 모두 어딘가로 가고 있고 경유지에 지나지 않는 이 별에 혹해서 그만 이곳에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정신을 차리자. 그곳에선 투명인간이여도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