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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0회 작성일 18-10-02 14:07

본문

눈사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을 함께 먹자고 했다.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에도 1그램도 녹지 않고

오히려 더 눈덩이가 불어난 것 같은 눈사람 친구는

내가 막걸리로 대신한 밥까지 싹싹 비워서

눈사람 몸매를 지키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제 안에 눈을

한 숟가락씩 퍼 넣는 것 같았다.

나도 배만큼은 눈사람 실루엣이지만

옷만 잘 입고 들판에 서면 그럭저럭 허수아비 정도는

되어 보일 것 같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내 살이

종일 들고 다니는 돼기 고기 너댓근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것과 그녀는 빅 사이즈 옷에도 끼여 보인다는 것에

관해 별다른 고민이 없어 보이는 것 같다. 그나저나

나는 부도탑 안에 담겨 있는 사리처럼 그녀의 영혼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그런 그녀를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걷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그녀를 이런 저런 핑계로 유인해서 동네 뒷산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였는데 그 산의 초입로가 있는 동네의 골목

끝, 외진 집의 계단 끝에 그녀가 주저 앉아 버렸다는 것이다.

살을 빼기 보다는, 그녀가 살 속에서 빠져 나와 버린 것처럼

탈진 일보 직전인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그녀가 건내주는

담배를 한 대 건내 받고는, 그녀가 지펴주는 불을 들이키며

그녀가 켜주는 음악에 맞춰, 그녀가 들려 달라는 나의 시를

읽어 주었다. 바하와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허밍으로 만든

것이 있는데 그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간은 어느 쓰레기 더미나

시궁창일지라도 거룩한 슬픔 같은 것이 드라이 아이스처럼 

느리게 피어오르는 것 같다. 하늘을 보다 눈물을 흘리면 눈에서

코발트 블루의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닦아도 닦아도

때가 묻지 않는 행주처럼 구름은 그 푸름이 얼마나 순결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떠다니는 것 같다. 눈 사람 그녀가 올 여름에도

한 점도 녹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삭정이나

부러진 나무 젓가락 따위를 박아 놓은듯, 어느날 벌어져서

흘러 내렸다는 앞 이를 보이며 그녀가 내게 건내는 웃음이

그녀의 찬사이며 비평일 뿐이다. 눈사람 답게 그녀의 흰 머리는

속이 차다. 염색을 하라고 퉁을 주기도 하지만 그녀는

왜 흰머리카락을 숨겨야 하는지에 대한 절실함을 스스로

느끼지 않는 것 같다. 그녀는 요즘 내가 쓴 시를 들어주는

1인 시 낭송회의 유일한 관객이다. 젊은 년들이 남의 계단앞에

앉아서 담배를 피며 무슨 짓을 하나 싶은지 맞은편 옥상으로

할머니 한 분이 일 없이 올라갔다 내려 오시는 것 같았다.

아직 담배를 피는 것이 그리 당당하게 느껴지지 않는 나는

우리 동네나, 내가 다니는 식당이 있는 동네에서는 그녀가

건내는 담배를 거절한다. 시어머니가 백주에 담배를 꼰아물고

있는 며느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나는 무섭다.

담배는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눈사람 친구와 내가 만나면 가지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어느 식당 주방에서 밤 늦도록 벌었을 돈일텐데

자주 말없이 밥값을 계산하는 그녀가 부담스럽기도 고맙기도 하다.

어떤 날은 전화를 받고 나가고 어떤 날은 전화를 받지 않는 나는

그녀에 비해 참 이기적이다. 그리고 나는 살도 빼고, 옷도 사입고

화장도 하는 속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몰래 그녀의 별명을 눈사람

친구라고 정해놓고, 그녀의 몸매를 비하하는 나쁜년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에게 담배를 얻어피고, 그녀는 나에게 시를 듣는다.

어떤 날은 햇빛을 생산하는 컨베이어처럼 반짝이며 강물이 흘러가는

강가의 풀밭에서, 또 어떤 날은 버려진 물건들이 쌓여 있는 공터의

허물어져 가는 계단에서, 또 어떤 날은 비온 뒤 땅이 젖은 테니스 코트

뒤에서 담배와 시는 뒤섞이고 흘러갔다. 다만 뭐든 먹고, 막걸리를 마시고

그러고는 헤어지는 것이다. 남자 이야기도 시어머니 이야기도 남편 이야기도

아이들 이야기도 하지 않고, 대체로는 내가 일하는 곳의 사장욕을 하는 것이다.

어떤 악당도 그녀의 가슴이라는 바다에서는 작은 포말도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천사라도 나의 가슴이라는 웅덩이에서는 고래가 되는 것 같다.

그녀는 대체로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웃고,

나는 대체로 떠들거나 열을 내거나 운다.

평생 그녀가 내 곁에서 녹지 않고 그렇게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밥을 같이 먹자고 전화가 왔는데 나가지 않았다.

나갈수가 없었다. 밥값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또 밥값을 내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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