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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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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9회 작성일 18-10-28 18:32

본문

어제는 엄마의 생신이라 창원에 다녀왔다.

여전히 엄마의 집은 교회를 따뜻하게 하느라 추웠고

고1, 2학기를 보내는 조카들은 키가 한 뼘 쯤 커 있었고,

살이 좀 찐 엄마의 무릎은 엄마를 무거워하는 것 같았다.

생선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인지, 커다란 조기를 쪄놓고

막걸리도 한 통 사두었고, 조개살을 많이 넣은 미역국은

맛이 있었다. 고성군 동해면 외곡리 한 마을에서 아래 윗담에

같이 사시는 큰 어머니들이 치매끼가 있는 것 같다는 뉴스를

들었다. 구십이 다 된 큰 집 큰 어머니는 접시 세 개와 젓가락을

작은 집, 수실 큰어머니가 가져 갔다고 우기며, 온 동네 노인들에게

소문을 낸다고 하셨다. 성정이 마르고 올바른 작은 집 큰 어머니는

억울하다며 펄쩍펄쩍 뛰시고, 누군가 집 밖에서 문을 잠근다며

무서워 하신다고 했다. 한 동네 사는 동서가 다 이상해졌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큰 집 큰 어머니는 엄마에게 뿐만 아니라

친척들에게 전화를 해서 사라진 접시 세개와 젓가락의 범인 이야기를

재차 하시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좀 우습기도 하고, 그렇게 얌전하고

말씀 없으시던 분들에게도 올 것이 왔나 싶어 서글프기도 했다. 오빠가

추석에 낚아왔던 삼치를 냉동 해둔 것을 포를 뜨주겠다며, 초장을 뜨놓고

엄마는 삼치를 거들떠보지 않고, 김발 발을 펴서 밥을 누이고 계셨다.

식탁 위에 놓여진 삼치가 녹아 물이 나고 있는데도 엄마는 삼치를 깡그리

잊어버리신 것이다. 깁밥을 한 줄만 싸고 말겠거니 했는데, 김밥은

가난한 집 아이들처럼 자꾸 불어나고 있었다. "엄마! 삼치 제가 썰께요"

"아이구! 참, 내가 그거 썰어준다고 칼을 꺼내놓고서는"

백살이 되려면 아직 스물 다섯해는 더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의 뇌가

낡아가는 것을 보면 백세 인생이라는 말은 빈말인 것 같다. 반쯤 정신이

나가서 숨만 쉬어도 백세만 채우면 백세 인생인지 궁금했다. 요즘 내 고민은

추한 노인이 되지 않는 것에 관해 많이 쓰인다. 내가 다니는 호프집에는

칠십 가까이 된 것 같은 단골 노인 커플이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술에

많이 취하면 홀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도 꺼리낌 없이, 옷 속에 손을 넣고

애정 행각을 벌인다. "아이구, 언니, 참말로 지랄도 풍년 입니더" "놔도라! 저그 몸

저그가 더듬는데, 니가 와글샀네?" 평소 때 손님이라면 하느님처럼 여기는 언니가

말의 모를 들이밀었다. 사실 내가 그들을 굳이 할아버지 할머니라 부르는 것은

그들의 나이 때문이지 그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로 보여서는 아니다. 아들이 고등학교

선생을 한다는 남자 노인은 거의 육십대 후반으로 보이고, 만난지 한달 보름만에 남자 노인의 통장에

있는 천만원을 다 쓰게 만들었다는 능력 있는 여자 노인은 육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것이다.

요즘 티브이에도 노인들의 황혼 로맨스가 많이 나오고, 장미희와 유동근이 연애를 하는 것이

참 멋지게도 보였는데, 실제로 그들의 드라마를 보는 것은 왜그렇게 눈꼴사나운지 모를 일이다.

나도 늙은건데 싶어 예쁘게 봐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하는 세상에 시위라도

하듯, 노골적으로 애정 행각을 하는 그들이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할머니처럼 이물스럽게 보이는 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나이에 맞게 옷을 입고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판에 박힌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보편적으로 그 나이가 갖는 현상들은 여름에 푸르던 나뭇잎이 가을에 붉어지고, 풋 과일들이

익어가는 일들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홍시가 땡감을 흉내낼 필요도 없고, 땡감이 홍시의 시간을 앞

당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홍시인 내가 땡감 분장을 하고 나타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어쩌겠는가? 그 연세에도 사랑이 찾아왔다면 또 사랑을 할 밖에..그러나 살이 타는 사랑을

또 되풀이 한다면 늦가을에도 땡감으로 매달려 있는 감 같은 것이다. 토닥토닥, 다 타가는 장작처럼

조용한 불씨를 품고 기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랑을 어떻게 품위 있게만 하겠는가? 다만 로맨스

그레이는 백발을 숨기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노인은 한 사회의 어른이다.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간에

노인이 어른의 역할을 피하면, 사회는 노인을 피하게 된다. 육체는 노인이 되었다고 노령 연금을 받는데

그것은 국가 차원의 어른 대접 아니던가? 노인이라고 노인 연금을 받으면서 욕망은 청춘인 것이다.

늙으면 늙을수록 곁에 이성이 필요하다. 서로 불이 붙어 죽어라고 타들어갈 상대가 아니라, 서로의

강한 것과 아름답고 좋은 것을 탐할 상대가 아니라 서로의 약한 것과 주름지고 냄새나는 것을 안아주고

다둑여줄 상대가 필요한 것이다. 부부는 늙어서야 비로소 사랑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입문 단계다.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는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밟아야할 사랑의 최 고지다. 그 지경에서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을 버린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그를 향한 사랑이 된다. 그가  살아 있어 주기만 해도 나는 사랑 받고 있는 지경에 이른다.

유난 떨지 않아도, 사랑은 뒷불에 달궈진 구들처럼 딱 좋은 온기가 되는 것이다. 노인이여! 사랑하라

이제사 드디어 참으로 사랑하라. 더 오랫동안 인간으로 산 자의 성숙한 사랑을 하라. 백주대로에서

키스하는 로맨스그레이가 아름다운 것처럼 포장하지 말라. 오래 주름진 볼을 부비듯, 햇빛에 잘 마른

수건의 감촉이나는 눈빛을 나누는 것이 로맨스 그레이의 등만이 느낄 수 있는 가을 햇볕이다. 할머니의

백발을 깍아주는 할아버지의 떨리는 손에서 바람이 잠든 가을 풀잎의 진동이 느껴진다. 박카스 할머니를

따라가는 노년을 젊은이들이 이해한다고 해서 드러내고 티를 내면, 늙어도 별 수 없는 늙은이가 될

뿐이다. 혈기를 따라 살기에 이미 쇠잔한 혈기을 다스릴 수 있어야 어른 대접을 받는 것이다.

나이는 먹었는데 젊은이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면, 젊은이와 똑 같은 조건에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괴테의 마지막 사랑을 늙은이의 노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연에 대한 혁명이라도 되는 양

포장하는 서양것들의 생각을 여과 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인 것 같다. 괴테는 죽을 때까지

욕정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창가에 예쁜 난초를 두고 아껴 보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관조의 나이에 이르러 손을 뻗치면 추하고 더럽다. 이미 내 몫의 젊은 날을 보내며

사랑도 했지 않은가? 동양에서는 몇 천년 동안 효라는, 독특한 구조의 사랑을 지켜 왔다. 여자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나를 있게 한 나보다 늙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지키는 생각과 일련의 행위들을

효라고 부르며 충과 함께 인간의 최고 덕복으로 여겨왔다. 군주와 같이 어버이를 여겼다. 그 시절 노인은

그저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밥상에서 수저를 먼저 들었고, 기침 소리만으로도 온 집안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래서 노인들은 더 가리고 절제하고 어른다움을 보여야 했다. 효는 과거를 봉양하는 문화가

아니라 미래를 보장 받기 위한 보험에 가까운 문화다. 노령 연금을 받거나 의료 혜택을 입는 금전적인

차원이 아니라 내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존경을 받고, 대접을 받고, 그와 더불어 노후 보장도 받는

문화적인 보험인 것이다. 내가 어른에게 대한 것을 내가 그대로 돌려 받는 문화 인 것이다. 죽을 때 된

노인도 17세 소녀를 사랑하는 주책맞은 문화가 들어오면서,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하나 둘 깨버린

노후 보장 보험이다. 사랑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사람은 사랑해야 한다.

가을이 깊어 떨어질 때가 되어야 비로소 감의 단맛을 내는 홍시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가 없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잘 익은 사랑을 해야 한다.

어른이니까 어른스럽게 사랑해야 한다. 황혼 로맨스가 황혼 증후군이 되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수실댁 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네집 동서 둘이 과부가 되었다.

뒤늦게사 어떤 영감이라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식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치욕이 되는 세대의 늙은 여자들이다.

여자이거나 남자였던 것이 사람이 되는 과정에 지나지 않고

끝내 아이들 아버지의 아내이며, 아이들의 어머니인 것이 자부심인

18세기 잔여 노인들이다. 그런데 나는 왜 긴긴 밤, 늙은 동서들끼리 전화를 하며

자식들 싸줄 갓 김치나 담고, 형님네 노인정에 줄 식혜나 담그며

형님들 치매 걱정이나 하는 엄마가 전혀 재미 없게도 불쌍하게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미용 고등학교 다니는 손녀가 얼굴에 뭔 보따리를 붙여주더니

피부가 보톡스 주사 맞은것처럼 팽팽해졌다는

75번째 생일인 여자가, 눈시울이 젖도록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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