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8年 12月 27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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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8회 작성일 18-12-27 23:40본문
鵲巢日記 18年 12月 27日
바람이 꽤 불었다. 바람이 꽤 차가웠다.
아침에 출근할 때였다. 10년 전에 들었던 유행가가 흘러 나왔다. 유행가처럼 인생이 지나 온 것 같아 슬펐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이었다. 점점 고립되어가고 점점 자폐가 되어간다. 늘 지나는 골목을 들어가며 늘 그 골목을 빠져나왔다. 목표지는 조감도였고 도착지는 집이었다. 그렇게 뺑뺑 돌았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많이 불어서 얼굴까지 얼얼했다. 목이 어는 것 같았다.
오늘 세 통의 전화를 받았고 세 번의 문자를 받았다. 세 통 중 한 통은 보험관련 영업전화였다. 한 통은 아내 고향친구인 모 씨의 전화였다. 저녁에 카페 온다고 했지만, 오지 않았다. 한 통은 동인 문 형이었다. 오후에 카페 오셔 여러 얘기 나누다 가셨다. 오늘은 웨하스를 들고 오셨다. 함께 먹었다.
세 번의 문자 중 한 군데는 사*점이었다. 커피 달라는 문자였다. 오후에 배송했다. 사*점에 잠시 머물러 점정님과 차 한 잔 마셨다. 언니가 긴 여행 끝에 오셨나보다. 호주에 7박 8일 코스로 다녀왔다. 언니는 잠시 외출 중이었다. 여기 점장은 카리스마가 좀 있다. 음악을 한다. 바이올린 보다 좀 무거운 첼로가 전공이다. 무슨 유명한 음악단에 속해 있는데 전국 어디든 연주가 있으면 다닌다. 전에 음악회할 때 연주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 꽤 능력자다. 카페 일은 늘 재미있어 한다.
저녁에 시를 읽었다. 한 편의 시를 쓰기도 했다. 시를 읽고 상상할 때가 즐겁다. 어떤 때는 잘 안 풀릴 때도 있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것도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역으로 바꿔놓는 작업은 참 어려운 일이다. 물구나무를 서는 것은 그나마 쉽다. 글로 물구나무를 세우는 일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일이다. 가장 어려운 문장을 읽고 그것이 해독이 될 때, 여태 내가 쓴 글들은 모두 쓰레기처럼 보인다. 물론 쓰레기 같은 글이지만,
시인도 계급처럼 보일 때가 있다. 어느 것은 정말 쓰레기고 어느 것은 말은 못해도 정말 위대하다. 어찌 그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하는
論語 述而 29章
互鄕難與言, 童子見, 門人惑, 子曰 與其進也, 不與其退也, 唯何甚? 人潔己以進, 與其潔也, 不保其往也.
호향 사람들은 더불어 말하기 어려웠다. 어리아이가 공자를 뵙고 문인이 의아해 했다. 공자께서 이르시길, 나아가려는 자와 함께 하고 물러서는 것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지나치는가? 사람이 자기를 깨끗하여 나아가려 할 때 그 깨끗함과 더불어 하면 되는 것이지 지난 일에 머물 수는 없는 일일세.
互鄕難與言호향난여언 호향사람들은 말버릇이 없어서 함께 이야기하기 어렵다.
童子見동자현은 어린아이가 공자를 뵙다. 見뵐 현 알현하다. 뒤에 목적어가 생략되었다.
萬國和, 而鬼神山川封禪與爲多焉.만국화, 이귀신산천봉선여위다언. 만국이 평화로우면 귀신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많아도 좋다. 史記·五帝本紀
朝過夕改, 君子與之.조과석개, 군자여지. 아침에 저지른 잘못을 저녁에 고친다면 군자가 이를 허용한다. 資治通鑑·漢武帝綏和元年 綏 편안할 수
唯何甚유하심은 아 어찌 (그 아이에게) 심하겠는가. 童子(동자)에게 너무 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唯유는 문장의 첫머리에서 아무 의미 없이 말을 끄집어내기 위하여 어조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어기조사. 보통 발어사發語詞라고 한다.
唯金沴木.유금려목. 금이 목을 해친다. 沴 헤칠 려 흐트릴 전 漢書·五行志
今乃立六國後, 唯無復立者.금내립륙국후, 유무부립자. 이리하여 이제 육국의 후손을 다 세우고 나니 더 세울 사람이 없습니다. 漢書·張良傳
不保其往也불보기왕야는 그의 지나간 일을 보증하지 않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을 다 허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竹 죽 / 陳與義 진여의
萬枝已釣風爲友 密葉能留雪作花
昨夜常娥更瀟灑 又携疏影過窗紗
만지이조풍위우 밀엽능류설작화
작야상아갱소쇄 우휴소영과창사
높다란 가지는 곧잘 바람에 소리를 내고
빽빽한 잎 새에 능히 쌓인 눈이 꽃처럼 피었네
어제 밤 달님이 다시 멋을 부려
비단 창문에 성긴 대나무 그림자 데리고 지나 가셨네
詩人 진여의陳與義는 1090년에 生하여 1139년에 卒하였다. 남송 낙양洛陽 사람. 조적祖籍은 미주眉州 청신靑神이다. 자는 거비去非고, 호는 간재簡齋다. 진희량陳希亮의 증손이다. 휘종徽宗 정화政和 3년(1113) 상사갑과上舍甲科에 급제하여 문림랑文林郞으로 개덕부교수開德府敎授에 임명되었다. 거듭 승진하여 태학박사太學博士와 부보랑符寶郞으로 옮겼고, 얼마 뒤 감진류주세監陳留酒稅로 폄직되었다. 금나라 군대가 개봉開封을 함락하자 남쪽으로 피난 갔다. 남도한 뒤 병부원외랑兵部員外郞이 되었다.
고종高宗 소흥紹興 원년(1131) 중서사인中書舍人과 이부시랑吏部侍郞 등을 역임했다. 6년(1136)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지제고知制誥가 되었다. 참지정사參知政事에까지 이르렀다. 시를 잘 지었고, 처음에는 황정견黃庭堅과 진사도陳師道를 배우다가 나중에는 두보杜甫를 배웠다. 국가의 환란을 당해 겪은 비탄과 한별恨別이 비장하게 그려져 있다. 후세 사람이 강서시파江西詩派 삼종三宗의 한 사람으로 꼽았다. 사詞에도 능했다. 저서에 간재집簡齋集 16권과 무주사無住詞가 있다. =중국역대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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