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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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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288회 작성일 18-12-28 12:50

본문

올 해가 몇 일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방목하게 한다. 

내년부터는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이

아직 내년이 되지 않은 시간에는 실컷 마셔 두라는 지령을

뇌에게 내린다. 

내년부터는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결심이

아직 내년이 되지 않은 지금은 오전반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용이다. 오전에 시간이 있으니까 점심을 먹으며

한 잔, 오후에는 잠을 푹 잘거라고 한 잔, 그 한 잔의 잔의 크기는

때마다 다르다. 

요즘엔 사는 기술이 하나 늘었다

잘못한게 있으면 수갑차고

누가 수갑을 채워가지 않는 잘못이라면 변명도 사과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대체로 나쁜 의도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뭐 그러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대체로 사람이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을 이해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에게나 이해 되기도 싫다.

이해 되지 못하는 것이 나를 증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봇대 옆에 버려진 진경산수화 같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낙관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이발관에 걸린 것이나 박물관에 걸린 것이나

차이를 알 수 없는, 

멋진 그림이긴 하지만 결국은,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 하고 묻게 되는 것이다. 

결국 변기 속에 떠 있는 예술가의 똥 이야기로 돌아가겠지만

그림이 되지 않는 그림이 그림이 되는 그림보다 많은 말을 하고 마는 것이다.

읽는 사람의 차이겠지만 말이다. 


햇볕이 좋다.

볕이 참 좋다는 말을 이해할 나이가 된 것인지,

썬 크림을 바르고 양산을 쓰고,

하다 못해 손차양이라도 드리우고 걸어 다녔는데

문득 부신 눈을 부릅뜨며 해를 우러러 보며

볕과 살가워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혈기가 식어서 나뭇잎처럼 햇볕의 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돈을 쓰고 싶은 충동이 수은주의 반대 방향으로 오른다

오랫만에 간 고모에게 이 옷이 나은지 저 옷이 나은지 물어보는

쌍둥이 조카에게 백화점에서 옷을 사주고 싶고,

얼마후 쌍꺼풀 수술을 할거라는 녀석들에게 적금을 깨어서

쌍수를 해주고 싶고,

김장갑이라며 십만원만 주고 왔는데, 한 오십만원 푹 찔러 넣어주고 싶고

시라는 별과 나와 연결된 마지막 한가닥 별빛 같은

늙은 시인에게 뜨끈한 국물이라고 사드시라며 돈을 부쳐 주고 싶다

(서울은 여기보다 기온이 세배나 떨어졌다)

그러나 일단은 지갑을 닫고 개겨 본다.

예상치 못한 수명을 누리게 된다면 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돈이 없으면 주변에 폐를 끼칠 것이다.

늙어서 추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나는 늙으면 새벽에 운동을 나가고,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며

대문 밖을 나가지 않을 것이다. 

젊어서도 이쁘지 않았는데 늙어서는 얼마나 추할지 무섭다.

책을 좀 사서 읽고, 좋은 그네나 의자를 사서 볕 잘드는

곳에 놓고 정물처럼 앉아 있다, 개나 고양이를 돌볼 것이다.

늙어서 붉은 칠을 입술과 얼굴에 하지 않을 것이다.

붉은 색 옷을 입지 않을 것이다.

머리를 염색하지 않을 것이고 파마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나는 친구가 없다. 친구가 되려고 했으나

되지도 못했고, 모두 각자 다른 별이였다.

부딪히면 깨졌고 터졌다. 괜히 찌그러지면서 조금 따뜻해질 뿐이다.

자식들을 껴입고 따뜻함을 구걸하지 않을 것이다.

죽어야 한다면 일상처럼 가만히 숨을 버릴 것이다.


볕이 참 좋다

나무들이 겨울이 오기 전에 왜 모두 내려 놓는지를 알겠다

이 세계는 원래 천국이였고

지금도 천국인 것이다.

지옥에서 끼고 온 안경을 벗지 못해서 지옥인 것이다.

식상하게도 그 안경을 욕심이라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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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金富會님의 댓글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옥에서 끼고 온 안경.
식상하게도..욕심..
깊은 말씀입니다. 좋은 글 읽고갑니다.
한 해, 덕분에 감사했습니다.
새해 좋은 일 많으시길요^^

배월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배월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겨울에는 조그마한 햇볕도 그립죠
/혈기가 식어서 나뭇잎처럼 햇볕의 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바삭한 나뭇잎처럼 혈기가 식어서 그런가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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