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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령 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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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98회 작성일 19-01-14 12:37

본문

나도 누군가에게 어떤 꽃의 이름과 오버랲 되어 본 적이 있을까?

나는 그 사람이 부럽지만,

그사람이 내가 아니여서 나를 죽이고 싶은

열렬한 질투는 내 생에서 다 한 것 같다.


언감생심, 장미나 모란이나, 국화, 다알리아 같은 눈이 부신 꽃에서

문득 나의 웃는 얼굴이 겹쳐지는 영화의 한 장면은 꿈꾸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걷다보면 무심코 밟고도 모르고 지나가는

이름도 모르는 수수한 꽃들도 제 각각 꼬인 벌나비가 있어

봄날의 햇볕은 최음제처럼 몽롱하게 울렁인다.

그런데 지금껏 내 삶을 돌아보면 은밀한 화밀을 품고,  짙거나 아련한

향기를 내뿜으며 가만히 누군가의 영혼을 내쪽으로 당겨 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신라의 여왕이 당나라에서 보내 온 모란

그림을 보고 벌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을 보니 향기가 없다

했다는데, 꽃에게 향기가 없다는 것은 화려한 빛깔과

알찬 열매를 가지게 된다해도 어쩐지 치명적인 결함으로 느껴진다.

사실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이렇게 벌나비가 꼬이지 않는 꽃은

새나 바람의 힘으로 후손을 퍼뜨린다고 들었다. 동백처럼 새가 님인

꽃도 있고, 벼나 보리, 그령이나 강아지풀처럼 바람이 님인 식물도

있다고 했다. 사실 꽃이라는 것이 그 식물의 생애 전체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여성의 가임기처럼 한 식물이 번식을 할 수 있는 기간을 일컫는

말인데, 어떤 잡초도 꽃이 되는 시간은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서 태어나 살고 있지만 여지껏 벼나 보리의 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칠 팔월이면  긁힌 피부에 앉은 피딱지나 벅벅 긁은 두드러기 같은

그령꽃들이 가려움처럼 들판에 번져 있는 것을 본 적은 있다. 그러니까

바람이 님인 이 꽃들은 곤충이 님인 꽃들과는 코드가 다른 것이다. 지구에

아직 동물이 생기기 이전에는 소나무나 소철 같은 식물들은 바람과 교미를

하며 지구를 푸르게 만들었는데 이 유서 깊은 식물들의 연애는 마치

여사제가 피운 향처럼 보이지 않는 님의 숨결에 스며드는 형식인 것이다.

그래서 끈적끈적한 거래가 성사 될 수 없는 형식인 것이다. 음식을 하다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손을 씻는 일이다. 스킨이나 로션이나 가장 가벼운

화장품이라도 음식에 들어가면 이상한 맛이 나는 것이다. 쌀이나 보리 같은

여성들은 빨리 꽃을 잊고 식구들의 밥 걱정을 하는 것이다. 쌀 20킬로는

그나마 가격이 올라서 6만원이지만,  장미가 20킬로라면 백만원치는

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배가 고프면 한 공기 밥을 먹지 한 다발

장미를 뜯어 먹지는 않는다. 태초에 피조물을 먹여 살려야 했던 신의 의지

가 이 사제 같은 식물의 물관 속으로 빨아 올려진 것이다. 신을 유혹하는데

꿀과 화려한 빛깔과 짙은 향기가 굳이 필요 없었으리라 추측한다.

은행 나무와 숱한 나무들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공기를 만들라는

천명을 받들려고 바람에 귀를 귀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벌 나비 꼬이지

않는 내게는 그런 고귀한 천성이 없어, 백주에도 술에 취해 집 앞 공터에

앉아서 꼭 나 같이 생긴 그령 잎에다 침도 뱉고, 욕도 하는 것이다. 친구

따라 강남을 가서 골초 친구가 슬그머니 내미는 담배를 피고 일어서며

장초불을 끈답시고 즈려밟는데 공을 들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령은

팔려가는 개처럼 천지도 모르고 팔팔 되살아나 꼬리를 치는 것이다.

결초보은이라 했던가? 저 먼 중국 어느 시절에 이 풀을 묶어 달리는

말과 병사들의 발목을 잡고 은혜를 갚았다는 고사가 있다고 들었다.

이 밟히기 위해 생겨난 것 같은 이 풀에게 무슨 의리가 있었던 것일까?

나랏덕이라곤 초근목피 뿐인데 나라에 난리가 나면 제일 먼저 뿌려지던

피를 마시고 자라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들추어보면 미덕이 없지도 않은데

화사한 꽃들의 배경이 되려고 생겨난듯 그령은 하잘것도 보잘것도 없어보인다.

오후반 호프집 사장 언니가 초하루와 보름날 꼭꼭 찾아가는 강보살의

남편은 보란듯이 공개적으로 바람을 피운다고 했다. 남의 기도를 해주는

사람이 통정을 하면 부정을 탄다고, 잠자리를 피하던 것이 미안해서

알고도 모르는체 했던 것이 어느새 암묵적인 남자의 권리가 되버린 것이다.

남자가 일주일이나 열흘 애인과 여행을 간 사이 강보살은

정기 좋다는 산과 물을 찾아 바람을 타고 다닌다고 했다. 신수를 보거나

사주궁합을 보러 오는 손님이 뜸하고, 굿도 살풀이도 없는 날에는

낮술에 취해서 아이처럼 운다고 했다. 나 또한 몸에 남은 낙이라고는

바람 뿐이다. 밟아도 밟는 느낌조차 없는 개 풀 같은 시를 길어내느라

허구헌날 흙바닥 같은 삶에 엎드려 사는 것이다. 이 저잣거리에서

이렇게 끈질긴 천착으로 지킬수 있는 꽃이 있으랴 할켜진 상처 같은

꽃들을 일찌감치 바람에 흩어버리고 그렁그렁 눈시울 범람하는

푸름이 되어 넘실넘실 이 생의 들판을 건너가는 것이다. 그려 그려

그령 그령, 그렁 그렁 그령 그령, 바람의 애인이 되려고

그령은 꿀과 향기를 엎질러 버렸다


추천2

댓글목록

공덕수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사합니다. 마틸다 선생님! 따지고 보면 신세 한탄 입니다.
매력 없는 여자의 자기 위로 같은거요.
충매화가 아니라 풍매화라서 글타고 우기는거예요.
아무려면 어때요?
이젠 나이 먹으니 자학도 덜 하게 되네요.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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