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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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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플루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4회 작성일 19-04-07 01:21

본문

그러니까 정확하게 1년하고, 하루를 지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퇴직금이라는 것을 탔다.

나는 왜 한 직장에 그렇게 지겹게 눌러 붙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분노나 지겨움을 참아가며

왜 그런 인내를 해야하는지 한 직장에 평생을 다니는

사람들을 영혼이 빈곤한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아예 빈곤하거나, 오랜 나날의 반복이 영혼을 빈곤하게

그러다 결국은 아예 사라지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체로 한 가지 일을 계속 반복하며 사는 사람들에게서

그를 그곳의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벽이 ​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영혼이 빈곤한 것도 문제지만 영혼의 과잉도 문제는 문제다.

틀에 한번 박혀보자는 결심을 굳이 한것도 아니다.

오전반을 하고, 오후반을 시작하기 전에 남는 시간에

시를 쓸 수 있고, 책을 읽을수 있다는,  시에게 볕드는

쥐구멍 하나를 허락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내 평생 견딘적이 없던 틀을 견디고 또 견딘 것이다.

틀은 갑갑하고 지겹지만 틀 밖의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해준다.

직장인이라는 붕어 빵틀의 붕어 형태 같은 틀이

일년 동안 조금씩 조금씩 내 삶을 심플하게 주형해온 것이 사실이다.

나는 강해졌고, 유연하고, 보편적인 일상을 가지게 되었다.

교정기를 낀 치아들처럼 ​가지런하게 입속으로, 나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 혹은 충동들을 밀어 넣을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별로 정이 가지 않던 오후반 사장에게 깊이 감사한다.

너무 완고한 그녀의 성격이 어느새 나를 교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년만 채우고, 퇴직금을 받고 그만둘까 생각을 했지만

시를,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쓸 수 있으면서 돈을 벌려면 이만한

조건의 직장이 없는 것이다. 시는 왜 이렇게도 악착같이 쓰야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시를 쓰지 않고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 투고를 해서 상금을 받을 생각도 아니고

아무런,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는데, 이미 나는 산소 호흡기를

빼면 죽는 식물 인간처럼 시에 목숨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틀에 찍혔으나 열이 가해지면 얼마든지 녹고 늘어지고 지글지글 끓는

치즈처럼 자유로운 본성을 잃어서는 않될 것이다. ​틀에 박히지 않는

내게 가능한 방법은 독서다. 여행을 갈 시간도 없고, 사람을 만날

여유도 없다. 읽고 또 읽어라. 독서만이 내게 허락된 여행이고 만남이다.

어지간한 장소, 어지간한 인간과는 급이 다른 장소이며 인간들과의

만남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인간들과 술잔 부딪히며 가슴이 금 가는 것보다

최소한 박사나 천재나 저술을 할만큼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종이에 옮겨 놓은 뇌세포와 접선하는 것이 나은 것이다.

인간,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시기 질투 중상 모략, 잘난체하고, 경멸하고, 욕심 많고,

돈, 돈, 돈, 외로움을 피해 인간을 찾고, 인간에게 숨는 것은

고양이를 피해 호랑이 굴을 찾아드는 것과 같다.

인간들의 머릿속에서 괜찮은 것들만 뽑아서 정리해놓은

것이 책이다. 우선 살아있는 사람들의 체온은 따뜻하지만, 이내 식는

기름덩어리처럼 영혼의 흐름을 막게 된다. 독서는 영혼의 사포닌을

삶의 혈관속에 투여하는 일이다. ​


퇴직금 120만원 중 백만원을 기념품처럼 고이 넣어 두었다.

행복하다. ​내가 퇴직금을 다 받아보다니,

내년 퇴직금도 받아야겠다.

언니가 한 삼년 더 가게를 한다고 했으니

언니가 가게를 그만 둘 때까지의 퇴직금을 받아보자.

언니가 가게 문을 닫으면 모아 둔 퇴직금으로

남편과 여행을 가야겠다. 티벳에 한번 가보고 싶다.

불교에 관한 책을 빠뜨리지 않고 읽는 남편에게

그 곳을 한번 보여주고 싶다. 아니 비행기를 한번도

타보지 않은 남편에게 비행기를 태워주고 싶다.

아니, 신혼 여행을 가보지 않은 우리가 그곳으로

신혼 여행을 가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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